고통을 회피하려는 반응은 어떤 생명체든 마찬가지다. 역설적이지
만 인간은 고도의 정신세계를 향유하는 대가로 고통이라는 선물도 받
았다. 때로는 육체적인 노동도 따르지만 사랑이야말로 더 없는 정신
노동이다. 사랑이 시작될 때나 순탄할 때는 이러한 노동이 전혀 부담
스럽지 않다. 그런 까닭에 ‘좋아서 하는 일(love labor)’이라는 용어도 있
는 것이다. 사랑할 때 분비되는 특수한 물질이 기분을 좋아지게 한다
는 것을 규명한 심리학을 빌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이런 사실을 알
고 있다. 모든 사냥에 위험이 따르듯 사랑할 때도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한다. 사랑이 무탈하게 진행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보험 약관
이 그렇듯이 원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기약에도 늘 예외 조항이 있
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행복과 고통도 그에 비례해 증가한
다. 고통에 초점을 맞춰 그 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문제 해
결 기법으로는 탁월한 선택이다. 하지만 실연의 고통이나 거절에 따
큰 상처가 두려워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이기적 자아 상태에
머무는 일이다. 또 자연의 이법에도 어긋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절대자의 장난감에 불과한 존재다. 계획은 항상 어긋
나고 세상은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가고 사랑해
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찬란한 인생이든 스스로 타락했다고 생각하든 우리 모두 자신의
라이프 스토리를 들려주고 또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걸 풀지
못한 원소가 구천을 떠돌면 악의 꽃이 되기도 하고 인류의 공적(public
enemy)이 될 수도 있다. 삼각주의 모래톱처럼 우리는 몸을 구성하는
원소를 매일 잃어버리고 사실상 일 년이면 모든 원소가 바뀐다. 따라
서 엄밀히 말하자면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지 않다. 이는 어떤 계
기로 물질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임계점을 돌파한 물체가 소위 창발성
을 통해 생명 현상을 지니게 된 결과 얻은 축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부에선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