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한 사랑은 지속한다

by 김광훈 Kai H

미국의 시인이며 문예 비평가인 에즈라 파운드는 생전에 문학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여인 올가 러지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은 행운아다. 하지만 역사에 남을 사랑 치고 순조로운 예가 없다. 모든 위대한 작가에겐 자신의 작품에 끝없는 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가 있게 마련이다. 아일랜드의 국민시인인 예이츠에겐 모드 곤이 그랬다. 그저 그런 시인으로 끝났을 예이츠는 그녀에 의해 민족주의 시인으로 거듭나고 예술관이 송두리째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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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그녀는 군인인 맥 브라이드와 결혼하며 평생 예이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이츠는 53세가 되어서야 결혼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 그 사이 노벨 문학상 수상, 상원의원 등 화려한 인생을 보낸다. 그의 깊은 연심을 아는 그녀가 ‘당신의 시가 우리 둘 사이의 자녀’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언제나 탄탈루스의 고통도 함께 주는 뮤즈의 변함없는 속성을 일깨우고 있다.


개인 사(史)에서도 진정한 사랑은 대체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수많은 연인이 한여름 밤의 꿈을 꾸지만, 사랑이 순항하는 경우란 매우 드문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파탄을 맞거나 통속적인 연애로 결말을 맺는다. 사랑은 불현듯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누구나 아련한 사랑의 아픔을 마음의 방 한편에 묻어 두고 생활에 쫓겨 허둥지둥 살아간다.


그렇다고 사랑이 소멸한 건 아니다. 인간은 현실의 땅을 딛고 살지만 피안의 사랑을 꿈꾸는 존재이기도 하다. 개츠비가 바라본 건너편 선착장 녹색의 빛은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첫사랑을 생각하면 숙제를 다 마치지 못한 채 잠들어버린 학생처럼 먹먹해진다. 첫사랑이 그리울 때면 바람에 출렁이는 바닷가 들녘을 찾곤 했다. 태고의 빛으로 번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애틋한 첫사랑을 보낼 수 있었다. 나른한 듯 검푸르게 빛나는 바다는 내겐 한없는 위안이 되었다.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면, 인간의 굴레마저도 감미롭게 느껴진다. 첫사랑은 땅거미 지는 고즈넉한 풍경보다 더 아름답다. 그대는 누군가의 삶을 뒤흔든 첫사랑이다. 기억하는 한 사랑은 지속한다. 이 봄, 사랑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 두라. 홍조 띤 설렘이 살며시 기척을 내며 지상 최고의 축제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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