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을 무는 용기

나신의 힘(naked strength)

by 김광훈 Kai H

예전에 마취가 없었을 때 수술받는 것은 정말 큰 고통이었다. 그래서 환자에게 총알을 물고 고통을 참도록 한 데서 이 말이 유래했다. 살면서 때로는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반드시 순풍의 국면도 있으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소총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도 끊임없이 발생하는 게 인생이다.

학창 시절, 지리 선생님은 참고서를 저술해 출판할 정도로 해당 분야에 정통한 분이어서 그 과목을 재미있게 배운 기억이 난다. 아직도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격해도’라는 용어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중간 위도는 40도가 안 된다. 38도가 중간쯤 되고 제주도는 33도쯤에 위치한다. 뉴욕은 물론이고 베이징, 심지어 영국에서 사실상 가장 남쪽에 있는 런던조차 50도를 약간 넘기고 있다. 50도라면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본토 쪽)보다도 위다.

놀라운 사실은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의 위도가 비슷하지만 기온은 천양지차다. 실시간으로 그곳 온도를 보는데 봄 기온은 비슷하지만, 겨울은 우리가 훨씬 춥다.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이 참 많은 곳이다. 그래서 그곳을 힐리빌리 (Hillibilly)라 부르기도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특히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는 근처는 우리나라의 이태원과 그랜드 하얏트 호텔 사이의 언덕을 연상하면 된다. 언덕을 차로 오르내리면서 겨울에 눈이 오면 도대체 차를 언덕에 어떻게 주차할지 의아했다. 그곳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내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눈이 거의 오지 않을뿐더러 온다 해도 지면에 닿기 전에 다 녹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산과 매우 유사한듯하다.

심지어 위도가 50도를 넘는 영국도 우리나라보다는 춥지 않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추운 이유는 찬 시베리아 대륙이 대양과 멀리 떨어져 있는 소위 격해도 때문이다. 이 경우 대륙과 대양 사이에 낀 지역은 여름에는 몹시 덥고 겨울에는 춥다. 우리나라 날씨가 이렇다 보니 고생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이 땅에 사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알프레드 테니슨은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참나무를 보고 나신의 힘 (naked strength)을 찬미했지만, 나무 입장에서도 극한의 추위는 분명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기온이 영하 이하로 내려가면 수액이 통과하는 관이 얼기 때문에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나무는 필사적으로 당분을 모아 부동액으로 사용한다.



배추를 몇 년 동안 재배했는데 배추를 좀 더 크게 키울 욕심에 겨울이 오기 직전까지 수확하지 않았다. 자칫 배추가 얼면 그냥 버려야 하는 위험도 있었다. 수확하는 날 배추의 밑동을 먹어보면 맛이 달았다. 이런 식물의 원리를 이용한 예는 많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 와인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아이스 바인이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도가 얼면 수확해 그를 이용해 와인을 만드니 달콤할 수밖에 없다.

와인은 같은 부르고뉴에서 생산되었다 해도 가격 차이가 20배나 난다. 동일한 지역이라도 사소한 지질학적인 차이와 와이너리의 품질관리가 이러한 격차를 보이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강렬한 태양이 포도나무에 좋다고 하지만 너무 환경이 좋으면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기보다는 포도 나뭇잎을 키우기에 급급해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환경 탓을 하지만 지나치게 환경이 좋으면 포도나무처럼 본질적인 목표에 충실하지 않게 마련이다. 사람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것도 그런 것 같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잘 극복하고 일가를 이룬 사람들에게서 감미로운 매력이 샘솟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화초 도령이나 아씨로부터는 인생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게 외에는 배울 게 없을 듯하다. 그게 인생의 진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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