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깎던 어르신

품질을 고집하는 용기

by 김광훈 Kai H

반도체 회사에 입사해서 처음 배치된 곳이 Customer service 부서로 당시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곳이었다. 일종의 해외 영업 관리 부서였는데, 부서 사무실에 걸려 있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규칙 1. 고객의 말이 항상 옳다. 규칙 2. 그래도 고객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규칙 1을 다시 읽어라. (Rule #1. Customer is always right. Rule #2. If the customer is ever wrong, read rule #1.). 이 구호는 미국에서 백화점 사업으로 대성했던 마샬 필드와 워너메이커가 애용하던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는 개성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회사의 방침이기도 해 난 철저히 그런 삶을 살았다. 회사에서도 고객 담당 직원에겐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던 것 같다. 부장과 독대하기도 어려웠던 권위주의 시절임에도 평사원이었던 내가 긴급한 고객의 불만 사항이 있으면 수천 명의 수하 직원을 거느린 담당 임원들에게 직접 찾아가 해결책을 타진하곤 했다. 그런 노력이 태평양 너머에까지 전해졌는지 과장 시절엔 미국 본사에 초대받아 고객 서비스 대상인 패러마운트 상을 여러 가지 부상과 함께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고객 서비스 정신도 품질 제일주의에 바탕을 두지 않고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과거부터 품질을 중시했지만 산업화 초기에 생산에 급급하다 품질에 소홀한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산 하면 품질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품질이 없으면 고객이 떠난다는 걸 알게 된 결과다. 수필가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이 문득 떠오른다. 방망이는 다듬이 돌 위에 올려놓고 옷감을 두드리기 위해 필요한 목재 기구다. 현재 백수를 바라보는 큰 어머니가 예전에 방망이질하던 기억이 난다. 이 방망이가 과거엔 집집마다 필수품이었던 듯하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저자가 시세보다 약간 더 주고 방망이 깎는 것을 한 노인에게 부탁했다. 방망이가 그만하면 다 깎인 것 같은 데다 차 시간까지 쫓겨 재촉하지만, 그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정 보완 작업을 했다. 손님이 그만하면 괜찮다는데 왜 계속 다듬느냐고 말해도 무시했다. 결국 차 시간까지 늦어가며 완성된 다듬이를 본 저자의 아내는 보기 드물게 제대로 만들어진 방망이라며 만족을 표시했다. 미안한 마음에 막걸리라도 대접하려고 그 노인을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수필은 얼마나 유명했던지 <마우스 깎던 노인>이라는 재미있는 패러디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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