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에 핀 꽃의 용기

어머니의 노래

by 김광훈 Kai H

월플라워는 벽의 갈라진 틈에 자생하는 풀꽃을 말한다. 또는 사교댄스 파티에서 용기가 부족해 주목받는 걸 회피하는 사람을 말한다. 마치 담벼락의 꽃처럼 룸의 한 편에 서있는 모습에서 연유한 표현인 듯하다. 하지만 모든 담벼락의 꽃이 그렇듯이 끈질긴 생명력과 야망을 감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면은 따뜻하나 자칫 냉담하고 고루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들은 심리적인 장애물에 걸려 용기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어떤 계기가 되면 내재했던 용기가 폭발해 큰 변화를 일으킨다. 엘리너 루스벨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엘리너는 댄스파티에서와 마찬가지로 내성적이며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나 영부인 역할뿐만이 아니라 독자적으로도 인권 신장에 큰 공을 세웠다. 40세 무렵부터 보행 장애로 장애인이 된 남편을 대신해 현지답사는 물론 여러 가지 정치적인 행사에서 큰 역할을 도맡아 했다. 여기서 남편은 FDR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4선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약칭이다.



어머니는 노래 실력과 음식 솜씨가 탁월했다. 양반의 부농 집안에 시집 온 둘째 며느리로 큰 행사를 자주 치러 뛰어난 요리 감각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습득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조림, 탕, 불고기 요리가 특기였다. 나중에 내가 회사에 들어 가 해외 고객과 일하면서 다양한 음식점을 드나들었지만, 어디에서도 어릴 적 그 미각의 제국을 다시 경험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노래 실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추정하기 쉽지 않다. 읍 단위 "콩쿠르"대회에서 우승해 주전자를 부상으로 받았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져 상당한 실력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매니저와 연결되지 않은 어머니는 끝내 신데렐라가 되진 못했다. 어머니의 재능을 전혀 물려받지 않은 난 자막 없이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다. 물론 노래도 풍부한 감정을 살려 음정에 맞게 제대로 부르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콩쿠르에 참가한 거나 아버지의 데이트 요청을 받아들인 건 당시로서는 꽤 용기를 필요한 것이었으리라. 똑똑한 남자로 보였던 그와 일생 고대광실에서 살 것으로 기대했지만, 남편은 백면서생인 몽상가라 끝내 집 한 칸 마련할 형편이 안되었다.

어머니는 이제 더는 한자를 수천 자나 읽고 쓸 줄 알았던 분이 아니다. 가벼운 치매 증세가 있어 잘 잊어버린다. 다섯 살 연상인 아버지가 오히려 집주소, 친척 이름 등을 계속 반복 질문해 어머니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면 어쩌다 역정을 낼만도 한데, 아버지는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자상함을 잃지 않는다. 이제 여생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평생 어머니를 한 번도 제대로 호강시키지 못한다는 회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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