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호주머니 정원

by 김광훈 Kai H

오래전 동네 골목을 산책할 때였다. 한 할머니가 빌라 옆 호주머니 정원에서 뭔가 부지런히 일을 하고 계셨다. 한 평남 짓한 조그마한 화단이었다. "뭘 심으시는데요?" 내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분꽃 씨앗인데 꽃피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할머니가 소녀처럼 밝게 웃으셨다.

이 동네에 내가 산지 십 년이 조금 넘는다. 그녀 덕분에 봄마다 꽃을 감상하곤 했다. 어떤 때는 그 작은 화단에서 잡초를 뽑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번 봄도 어김없이 그 화단에 꽃이 피었다. 1922년생이니 백수를 바라보는 연세다. 본래 충정로에 사셨는데, 소녀 시절엔 스케이트 선수이기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정정한 모습으로 마을 앞산에서 운동하시는 모습을 가끔 보았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빌라 주민에게 수소문해보았다. 다행히 돌아가신 건 아니었다. 다만 치매기가 있어 구로구에 있는 요양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었다. 난 주말이 되기가 무섭게 가리봉동에 있는 요양 병원에 달려갔다. 물론 그녀가 좋아하는 초코 파이와 바나나 우유를 사들고.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셨다. 하지만 내가 이미 대답했는데도 어떻게 지내는지 세 번이나 물었다. “조금 전에 물어보셨잖아요”라고 하마터면 실언을 할 뻔했다. 스마트 폰으로 평소 좋아하는 '나의 갈길 다 가도록'이란 찬송가를 들려드렸다. 헤어지면서 봄꽃이 활짝 핀 자신의 꽃밭을 동영상으로 보시더니 몇 개 남지 않은 앞니를 드러내고 웃으셨다.

한 번 더 뵙겠다고 했지만 생업에 쫓기다 보니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간호과에 전화했더니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혹시 유언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화단에 물을 줘야 한다고 만 말씀했다고 한다. 간발의 차이로 다시 뵙는 걸 놓쳤다. 살면서 이럴 일을 가끔 겪는다. 사람 만나는 일은 앞으론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영어에 그래니 덤핑(granny dumping)이란 말이 있다. 미국에서 주로 경제적인 문제로 친척에 의해 요양원에 노인을 버려두던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도 우바수테(노파를 유기하는 것)라 해서 고대에 있었던 전통이다. 노송 사이로 달빛이 흐르는 가운데 아들이 노모를 업고 산으로 올라가는 요시토시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살무사나 가시고기 생각이 났다.

장사익의 ‘어머니를 업고 꽃구경 가는 아들’의 노래도 떠오른다. 푸른 솔잎을 꺾어 온 길을 표시해 아들이 깊은 산속을 혼자 내려갈 때 길을 잃지 않게 하려는 노모의 마음... 요즘 요양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개원할 것이다. 다들 맞벌이를 해야 겨우 유지되는 가계라 어르신을 전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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