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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Gang Jan 29. 2020

여긴 어디? 난 누구?

아이의 한국에서 첫 학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뭐 적응할 사이도 없었던 것 같다. 난생처음 학부모가 되고 입학식 때 가득 찬 강당을 바라보며, 저출산 시대라는 뉴스의 멘트가 무색하게, 서울 주변 도시 신도시의 위엄을 제대로 겪었다. 학교에서도 이렇게 많은 학생이 입학할 줄을 몰랐다며, 교실, 급식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대략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던 학교에 보내기는 전쟁이었다. 시간이 흘러 학기가 끝날 때 즈음이면 혼자서 씩씩하게 학교를 다녀오는 모습을 몰래 베란다에서 지켜보면서 흐뭇해하기도 대견하기도 했었는데, 지금도 그러하지만, 예전 내가 어릴 때도 전학 이후에 약 30여분 거리에 시골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었는데, 혹시나 나의 어머니도 어디선가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보다 씩씩하게 학교생활도 잘했고, 학교에서도 똑 부러진다고 의외의 평가를 받아서 학부모로서 여러 가지 느낌을 받게 했다. 


방과 후에 영어수업을 듣긴 했지만, 한국어로 둘러 쌓인 환경인데 뭐가 머리에 제대로 들어올까 싶다. 그냥 친구들과 노는 게 좋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출국의 시간이 왔다. 아직 '이민'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아이에게는 그저 비행기 타고 어딜 가나 보다. 근데 짐을 다 싣고 가네 정도의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으로 보낼 국제이사를 하고, 한국에서도 집을 정리하고, 또 이사를 하고 정신없이 출국 준비를 했던 터라 다들 컨디션도 떨어지고, 급기야 출국 전날 둘째는 심하게 콜록거리고, 다들 체력이 바닥인 상황이었다. 병원에서 약을 받아 들고 그렇게야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으로 타 본 장거리 비행기에 다들 제대로 잠 못 이루고 눈이 벌게진 채로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는데, 다들 컨디션이 안 좋다. 그래서 일단 연결 편을 포기하고 바로 렌터카를 수배를 한다. 디트로이트에서 워싱턴 DC까지는 대략 8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일단 생각은 아이들이 차를 타면 잘 자기 때문에 몇 시간 갔다가 피곤하면 자고 다시 가자고 일정을 갑작스레 변경했다. 그런데 렌터카도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우여곡절 끝에 차를 갈아타고 미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며 신기한 눈으로 뒤에서 조잘조잘 대다가 곧 잠이 들어서 '아 잘되었다'라는 생각이 들고, 나도 거의 하루를 꼬박 못 잤지만 그래도 혹시나 졸리면 쉬었다 가지 하며 출발 이후 처음으로 "조용"하게 운전을 하고 있는데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뜨거운 미국의 여름 햇살을 이기지 못했는지 금방 또 깨서 콜록거리고, 첫째도 어지럽다며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장시간 비행이 힘들었나 보다. 그래서 가까운 호텔로 들어가서 다들 잠에 들기 시작했고 몇 시간 잔 후에 새벽 1시에 다시 출발해서 새벽에 다시 호텔에 도착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워싱턴에 도착해 며칠 쉬고 한국 장을 받아서, 여름에 휴가를 떠나는 인파에 묻혀서 Ocean city로 향했다.  


키를 받아 들고, 한국에서 출발한 지 꼬박 삼일 만에 텅 빈 집에 도착한다. 아이들은 텅빈 집과 앞뜰과 뒤뜰이 있는 집이 신기한지 연신 뛰어놀기 시작한다. 열심히 뛰어다녀도 아랫집 눈치를 안 봐도 되니 아무런 가구도 없는 텅 빈 집이지만 왠지 뿌듯하다. '그래 더 뛰어놀아라' 그렇게 한 달을 푹 놀았다. 바닷가가 가까워서 바닷가에서 실컷 놀기도 하고, 사람이 별로 없는 동네 놀이터에서 자연을 벗 삼아 실컷 놀았다. 


그 사이에 나는 관련 서류 (주로 신분증, 아이 접종기록, 거주 증빙 등)를 준비해서 학교에 등록을 하였고, 속으로 여기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1학년으로 처음부터 함께 시작한다는 점이 그나마 마음에 놓였다. 등록이 되면 개학 하기 얼마 전에 담임 선생님이 배정이 되고, 각 학년에서 필요한 꽤 많은 준비물을 준비해 달라는 우편물을 받는다. (그래서 미국은 매 학년이 시작되는 가을이 되면 back to school sale을 한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Open house를 하는데 선생님을 직접 만나고, 반의 위치도 파악하고 대략 학교에 대한 분위기를 익히는 게 목적이다. 미리 사둔 준비물을 싸들고 온 가족이 Open house에 참여한다.  


물론 미국 학교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지금 아이가 다니는 Showell Elementary는 건물이 좀 오래되었는데 (1976년에 지어짐), 각 반마다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약간 학년별로 구분된 커다란 섹션에 각 반별로 약간의 구분이 있는 반 오픈형 구조였다. 이것이 굉장히 신기했고, 각 반마다 선생님의 개성에 따라서 다양하게 꾸며있는 것들이 인상적이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뭐랄까 '뭐 이렇게 너저분하게 늘어놨지? 덕지덕지 붙어있고?' 이런 반응일 수도 있다. 한국의 교실과는 차이가 많이 있다. 담임선생님도 만났는데, 원래 담당 담임선생님이 육아휴직 중이라 임시 선생님이 오셨는데 아주 젊으신 여자 선생님이셨다. 돌아오는 길이 와이프와 기대 반 걱정 반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될지.. 


미국의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9월 초 Labor day가 지나면 개학을 하는데, 대학이 그 전 주부터 개강을 해서 내가 첫 주를 마칠 무렵 드디어 첫 등교날이 다가왔다. 집에서 나설 때까지 말짱한 얼굴로 갔는데, 학교에 도착하면서부터 아이 눈에도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나 보다. 학교는 일찍 도착하는 아이들은 카페테리아에서 대기를 하다가 8시 30분 종이 울리면 교실로 가는 복도 문이 열려 들어갈 수 있는데 첫날이라 함께 카페테리아에서 기다렸다. 뭔가 글썽글썽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울기 시작한다. 이제 알았나 보다. 이곳에서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영어도 못하고, 친구도 없는데,  


첫날이라 담임선생님이 카페테리아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손을 꼭 쥐고 놔주지 않고 울고 앉아 있는 아이를 선생님께 건네주었다. 나도 9시 30분부터 수업이 있는 터라 빨리 학교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 8시 30분 ~ 오후 3 시 30분 까지.. 나 역시 적응을 하고 있는 첫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하루 종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바라보며 노심초사하다 두 번째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학교로 달려간다. 40여분 걸리는 그 길이 그날따라 어찌나 멀어 보이던지, 심장이 두근두근 한다. 


3시 30분이 되면 아이들이 마치는데 일부는 스쿨버스를 타고 또 일부는 픽업 나오는 차를 번호표를 대조하고 타고, 또 일부는 카페테리아에서 부모와 만나서 하교를 하게 된다. 카페테리아로 30분 전부터 들어가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왔다 갔다 조바심 내고 있으니 아이의 영어를 담당하시는 ESL 선생님이 조금 미리 오셔서 웃으며 아이가 곧 괜찮아졌고 웃으면서 잘 하루 잘 보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3시 30분 종이 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시무룩한 얼굴이 아이가 카페테리아로 들어오더니 이내 내 모습을 보고 달려와 푹 안긴다.


"고생했어. 우리 딸" 


집으로 돌아오니, 와이프도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렸다고 한다. 부모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물어봤더니 당연히 하루 종일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눈치껏 따라 했다고 한다. 선생님도 손짓 발짓을 하시며 아이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도 하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ESL 시간이 되자 (ESL 프로그램은 별도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영어 선생님이 오셔서 둘이 앉아서 몇 개 사물을 놓고 단어를 더듬더듬 말하고 따라 하는 것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잠시 다니긴 했지만, 뭐 실력이 어떻겠나) 영어를 듣지도 말하지도 읽지도 (알파벳 정도만 겨우) 못하는 아이가 7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다는 게 대견스럽다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정말 '난 누구? 여긴 어디?' 느낌이지 않았을까. 


조급한 마음에 저녁을 먹고 아이와 누워 아주 도서관에서 빌린 아주 쉬운 영어책을 폈다. 알파벳도 겨우 보는 아이에게 영어책을 같이 읽자고 한다. 한 문장을 읽는데 20분도 더 걸린다. 각 단어의 의미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르고, 구조가 다른 말이니 뜻도 알리 만무했다. 나 역시 마음만 급하고 이내 짜증이 확! 나버린다. 그렇게 아이가 힘들어할 상황이 짜증이 난 모양이다.  


아 어쩌지.. 그렇게 아이가 미국에서 힘겨운 첫 날을 보낸다.



출처: https://07701.tistory.com/144?category=824459 [강박의 2 c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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