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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l 12. 2020

태평양, 10개의 이야기

사이먼 윈체스터, 《태평양 이야기》

태평양어떤 이미지부터 떠올릴까푸른 바다넘실대는 파도아름다운 산호로 이루어진 섬저 깊은 심연의 화려한 빛깔의 열대어구리빛 피부의 폴리네시아인참치를 잡아 올리는 원양어선물론 이런 이미지는 선입견일 뿐이다태평양은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이고지진의 근원이다태평양에선 수백 차례의 원자 폭탄수소 폭탄 실험이 수행되었고인간이 내다버린 플라스틱 조각들이 모여 섬을 이루며 떠다니고 있다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풍전등화 같은 처지이고미국과 중국의 해군과 공군이 첨예한 대립을 하는 바다다고요하지만도 않고그렇다고 떠들썩함이 쉽게 눈에 띠지도 않는 바다가 바로 태평양이다.

 

우리가 태평양의 한쪽을 면하고 있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학교의 교가들 때문이다지금도 끝까지 부를 수 있는 고등학교 교가에서는 태평양의 노도(怒濤)’를 발밑으로 굽어본다고 했다거기에 지금은 황사의 근원지로 알려진 노비사막의 모래를 한 줌의 먼지로 표현했으니그만큼 웅대한 기상을 가지라는 뜻이었다태평양이야말로 웅장한 기상을 비유할 만한 존재인 셈이다.

 

사이먼 윈체스터가 바로 그 태평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했는데윈체스터는 1950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그 이후에 태평양을 두고 벌어진 (수백 개의 후보 가운데) 10개의 이야기를 골랐다. 10개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독립적인 이야기지만(하나하나가 모두 단행본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다), 묘하게도 서로 호응하면서 태평양의 과거와 오늘바다와 섬대륙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모순과 희망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애당초 태평양 이야기라고 했을 때그저 자연에 대한 이야기가 주()일 거라 예상했는데그보다는 그 태평양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류의 이야기라는 사실에과연 사이먼 윈체스터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사이먼 윈체스터가 1950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삼은 얘기부터 해야 한다여러 저자들이 현대의 시작을 달리 잡았다이안 부르마는 1945년을 ‘0이라고 칭하며 현대의 시작점으로 잡았고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는 1947년은 현재의 시작이라 했다나름의 이야기 있고또 그럴 듯 하다사이먼 윈체스터가 1950년 1월 1일을 현대의 시작으로 삼은 까닭은 일단은 과학 때문이다. 1956년 동위원소의 비율 측정으로 연대 추론이 가능해지면서(탄소연대측정법기준이 되는 시점이 필요했다과학자들은 태평양에서 이루어진 원자폭탄 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한 시점인 1950년 1월 1일을 기준이 되는 날짜로 잡았다그해는 또한 호찌민이 베트남 독립운동을 시작하고일본이 새로운 나이 계산법을 도입하고뉴욕의 그랜드센트럴 터미널의 음악이 멎은 날이었다이는 신화적종교적이고문화적인 이유로 기준연대가 되는 서기(AD)에 비해 당연히 과학적이며현대적이다물론 관습을 이기기는 쉽지 않겠지만사이먼 윈체스터가 태평양의 현대를 이야기하는 데 기준이 되는 날짜로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렇게 해서 태평양의 현대에 관한 이야기로 꼽은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핵실험과 핵실험으로 터전을 잃은 섬 주민들에 관한 이야기(핵실험으로 일그러진 바다)

휴대가능한 트랜지스터라이오를 개발한 소니의 경영진과 과학자 이야기그러니까 일본의 도약에 관한 이야기(트랜지스터라디오 혁명)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독특한 문화에서 젊은이들의 문화가 된 서핑에 관한 이야기(서핑파도가 주는 선물)

북한의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을 중심으로 남북한 분단에 관한 이야기(럭비공 같은 나라북한). 여기서 저자는 북한을 골칫거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홍콩 앞바다에서 벌어진 퀸엘리자베스호의 화재 사건이는 홍콩 반환에 대한 이야기로태평양 지역의 식민지 독립에 대한 이야기다(태평양 식민 시대의 종식)

태풍과 엘리뇨 등에 관한 기후 이변태평양에 위기가 닥치다

지역적으로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스스로 서구임을 주장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모순적인 태도(오스트레일리아는 아시아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생명의 기원을 담고 있는 태평양 바닷 속 이야기(앨빈호바닷속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다)

태평양의 오염을 경고하는 바다가 보내는 경고

그리고 당연히 미국과 중국의 충돌’. 여기서는 놀랍게도 필리핀 피나투보화산 폭발 이후 무너진 미국의 서태평양 방어선으로 인한 중국의 도발과 미국의 응전이라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가장 가까운 이야기는 역시 푸에블로호 납치와 관련된 이야기지만여기에는 우리의 아픔이 별로 담겨 있지 않다지도 위에 임의적으로 그은 선 때문에 태어난 나라가 북한이라는 인식이다(사실 그것 때문에 태어난 나라가 남한이라고 해도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부주의한 첩보 활동으로 납치된 미국의 낡은 선박과 골칫거리’ 북한이라는 인식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 보이고, DMZ에서 잡지사의 광고주들을 모시고 오찬을 했다는 마지막의 에피소드는 어쩐지 씁쓸해 보이기도 하다이게 사이먼 윈체스터라는 한 작가에 대한 실망이라기 보다는 한반도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이라는 생각이 우선이다.

 

눈을 반짝이며 제일 흥미롭게 읽은 글은 앨빈호라는 잠수정이 찾아낸 심해열수공에 관한 이야기다태평양의 깊은 바닷속에서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었고공기가 닿지 않는 그 깊은 바닷속에서 생명체들에 에너지를 주는 것은 황을 기반으로 화학합성을 하는 미생물이다또 온갖 광물질을 포함한 물질들이 한데 엉켜 뜨거운 김을 품어내는 심해열수공은 이제 생명의 기원에 관한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이자경제적으로도 유용한 보고로 꼽히고 있다이런 이야기가 태평양을 둘러싼 역사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워 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하지만 이런 이야기야말로 태평양의 본질이지 않나 싶다.

 

끝으로 사이먼 윈체스터는 항공모험오염쓰레기 소용돌이산호 탈색 현상 등에 관한 태평양의 교훈을 이야기하지만사실 그건 중언부언이다그러나 중언부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잘 안다태평양은 정말 넓은 바다이며거기서 생명이 태어났으며생명이 살아가고지구라는 (적어도 인류에게는 유일한행성에 에너지를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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