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의 세계

볼테르, 『캉디드 또는 낙천주의』

by ENA

찾아보니 한 7년 전 쯤 이현우의 『문학 속의 철학』를 통해서 『캉디드』의 줄거리를 아주 많이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책에 대한 독후감에서는 이현우가 말한 좋은 서평의 정의대로 “마치 그 책을 읽은 것처럼 여겨지는” 서평이라고 했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생각난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책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책을 직접 읽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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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짐작했던 것보다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의 최고봉 중 하나랄 수 있는 김순옥의 <펜트하우스>가 생각났다. 아, 물론 다루는 주제나 수준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불쑥 살아나고, 아주 우연히 맞닥뜨리고 하는 그런 것 때문에 그렇다. 아무튼 현대 소설은 아닌 만큼 디테일의 면에서는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미만큼은 충분하다.


길지도 않다. 왜 『캉디드』를 긴 소설이라고 생각했을까? 볼테르라는 이름 때문에? 줄거리를 읽었을 때, 전 세계를 다 아우르는 광대한 스케일 때문에? 어쨌든 지금으로 치면 겨우 중편 소설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거기에 이런 세계를 담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이 소설은 이른바 볼테르의 ‘철학소설’이라 불린다. 17세기 프랑스 최고의 계몽주의자 볼테르가 자신의 철학을 담은 소설이라는 의미다. 볼테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이 『캉디드』가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볼테르의 생각을 잘 엿볼 수 있고, 또 읽을 만하다는 얘기다.


그럼 볼테르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얘기하고 있을까? 우선은 제목에도 들어있는 ‘낙천주의(또는 낙관주의)’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낙천주의란 지금 쓰이는 의미, 즉 세상과 인생을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선다. “모든 것은 선하다”라는 철학적 관점인 ‘최선설(最善設)’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캉디드의 스승인 팡글로스로부터 나오는데, 이런 관점은 모든 사물이 인간의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견해로 이어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당시에는 꽤 심각하고 그럴 듯한 관점이었다. 볼테르는 캉디드의 여정을 통해서 세상의 불행과 불의를 보여주며 낙천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남아메리카에서 만난 충실한 부하 카캄보와의 대화를 들 수 있다.



‘낙천주의’가 뭐냐는 카캄보의 질문에, 캉디드는 다음과 답한다.

“아, 그거? 그건 말이야,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는데도 모든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미친 열병이야.” (88쪽)


그러나 볼테르는 낙천주의가 완전히 실패한 철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캉디드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꽤나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게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고, 거기서 “이제는 우리의 뜰을 가꾸어야만 합니다.”라는 말로 맺는 것도 그렇다. 볼테르는 낙천주의에 대해 비판은 하지만 그 효용성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온갖 시련을 겪은 형이상학자 팡글로스가 아직도 최선설을 고수하느냐는 캉디드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는 것은 이 철학의 당대에 상당히 견고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의 견해는 시종일관 똑같다네. 왜냐하면 요컨대, 나는 철학자이기 때문이야. 앞서 한 말을 뒤집어선 안 돼. 그것은 라이프니츠가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정조화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고, 충만함과 미세물질과 마찬가지로 선이기 때문이라네.” (142쪽)


그래서 볼테르는 낙천주의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듯하다. 그런 생각은 제25장에서 만난 베네치아 귀족 포코쿠란테와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캉디드는 “스스로 어떤 것도 판단하지 않도록 교육받아” 왔는데(‘캉디드’라는 이름 자체가 ‘순진한, 순박한’이라는 뜻이다), 볼테르의 사상을 체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포코쿠란테는 많은 고전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내비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의 것이라면 뭐든 감탄합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읽을 따름이에요. 오로지 내 취향에 맞는 것만 좋아합니다.”


이 밖에도 볼테르는 당시의 정치 상황과 종교에도 비판을 가하고 있다. 특히 종교의 반이성주의에 대해서는, 엘도라도와 대비시키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소설은 경쾌하고 유쾌하지만, 담긴 철학은 매우 깊은 소설이 『캉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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