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우리 역사를 명료하게 인식하다

황현필, 『요즘 역사: 근대』

by ENA

“요즘 역사”라고 제목을 달아 놓고, 대원군의 등장에서 1910년 경술국치까지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그런데 뒷 날개의 출간 예정인 책 목록을 보고는 이게 큰 기획의 첫 단추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순신의 바다』로 이순신에 관한 대중적 열풍에 한몫했던 황현필은 ‘요즘의 역사’를 근대부터라고 파악하고, 그때부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현대, 현재에 다다르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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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담긴,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부터 약 110년 전까지의 역사는(이렇게 계산하니 정말 요즘의 역사 같아 보인다) 사실 별달리 새로이 밝혀낼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그 해석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 해석이라는 것의 성격이다.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는 식의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황현필의 생각이다. 그것은 역사를 옳게 바라볼 것인가, 그릇되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본다. 그렇게 보았을 때 그 시기의 역사는 보다 분명하게 다가오고 비판해야 할 지점, 그래도 인정해야 할 지점, 아쉬워 해야 할 지점, 우리가 분명하게 계승해야 할 지점에 확실해진다.


이 책은 대단히 투명하다. 객관을 가장한 두루뭉술한 말로 자신의 견해를 피해가지 않는다. 그에게 고종은 천하의 암군(暗君)이었고, 민비는 최악의 여인이었다. 서재필은 미국인으로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이 없는 인물이고(미국인이라는 국적만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인으로 살아갔고, 미국인으로 조선을 바라보았으므로), 동학농민전쟁은 그 아우성을 높이 사서 계승해야 할 운동이었다.


모든 시각이 명료하니 술술 읽힌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술술 읽혀도 좋을 만큼 편한 역사는 아니다. 그럼에도 황현필은 자학사관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조선은 비판해야 할 지점이 있는 국가였지만, 50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유지된, 세계사에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국가였다. 그건 그만큼의 정교한 정치 시스템을 갖추었던 국가였다는 얘기다. 그런 국가가 근대에 이르러 그 운명을 다했다는 것이 안타깝고, 그것을 촉발한 이들이 분개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역사 서술이 비분강개형이라고, 즉 감정적이라고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시각이 분명하다고 감정적인 것은 아니다. 쓰는 단어가 조금 격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역사에 대한 시각은 중립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립적인 것이 가장 편파적인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역사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중요한 것은 어느 쪽에서 보는 역사도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 그것들이 다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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