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물리학자와 '가면증후군'

브라이언 키팅,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by ENA

제목의 ‘물리학자’는 말 그대로 물리학자다. 그런데 그냥 물리학자가 아니라, 모두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두뇌를 믿지 않는다’니... 이건 뭔가 오해가 있는 게 아닌가? 뭔가 다른 게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호기심을 제목부터 자아낸다.


아홉 명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인터뷰했다. 인터뷰한 내용만을 담은 게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함께 담았다. 물리학자를 초청해 인터뷰를 하고, 이 책을 쓴 브라이언 키팅도 물리학자다. 그가 이 책 전에 쓴 책의 제목은 “노벨상을 놓치다”(아직 번역은 되지 않은 것 같다). 유망한 우주론 물리학자다. 노벨상에 가까이 다가갔던(?) 물리학자이니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들과 말이 잘 통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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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소개된 물리학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것 말고. 실제로 그들의 두뇌를 믿는지, 그렇지 않는지는 내용에 없다). 내가 파악한 공통점은, 우선 노벨상을 받고 난 후의 태도다. 노벨상을 받은 후 그 명성으로 강연이나 하러 다니지 않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연구를 했고, 분야를 달리 하면서 연구한 경우도 있다. 그들은 노벨상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과학자로서의 자기 인식이 철저한 이들이다.


또 한 가지는 겸손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게 ‘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제목과 관련이 있을 듯한데, 그들은 자신이 이룬 업적이, 즉 노벨상으로 자신들을 이끈 업적이 자신이 엄청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훌륭한 스승과 동료가 있었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시간과 장소에 맞게 자신이 있었기 그랬다고 한다. 그들은 끈질기게 주제를 파고들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는 주제를 잡고 난 후, 그게 쉽지 않고, 또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연구를 거듭했고, 그게 노벨상으로 이루는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불확실성과 불안을 딛고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면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이뤄낸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자꾸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들에게 묻는 것이 있다. 바로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에 관한 것이다. 저자 브라이언 키팅은 <프롤로그>에서부터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내가 과연 누군가를 가르칠 만한 사람일까? 내게 수학은 늘 어렵고, 물리학 이론도 자연스럽게 터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이 분야를 택한 것은 남달리 머리가 좋은 까닭이 아니라 열정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회는 천재를 존경하는데,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자리를 내가 어쩌다가 운이 좋아 사기꾼처럼 차지한 게 아닐까.”


자꾸 이것을 언급하고, 질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빠져 있는 이 회의감이 훌륭한 과학자에게도 공통적인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공통적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한 것일까? 이 가면증후군은 과학을 하는 데 지장을 주고, 혹은 도움을 주는 것일까? 나는 이게 가장 궁금했다.


가면증후군은 자기가 걷는 길에 대한 회의감이다. 만약 이게 지나치면 움츠려들고 어떤 새로운 것을 주창하고, 그것을 밀고 나가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회의하는 태도는 과학자에게 필수적이지만, 그게 심해저 가면증후군의 단계에 이르면 문제가 생긴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믿음(“전문가이시니까 잘 아실테니...” 등등)이 너무 버거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 이후에 그쪽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죄송합니다. 수상자가 잘못 전달되어서요.”라는 말을 들을까봐 조마조마했던 적도 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모르겠다. 과연 극복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과학자와 ‘가면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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