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사랑하기 때문에』
"마크, 에비, 앨리슨.
안면도 없고 한 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지만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세 사람 모두 존재의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폭발 직전인 격변 상황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기욤 뮈소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2014년이었다. 『센트럴 파트』였다. 아마도 그의 열 몇 번째 작품 쯤 되는 소설이었으니 무척이나 늦게 기욤 뮈소의 세계를 접한 것이었다. 그때 쓴 독후감을 보면, ”이제 기욤 뮈소의 팬이 될 것 같다.“라고 적힌 걸 확인할 수 있듯이, 그 후로는 그의 작품이 나왔다고 하면, 거의 빼놓지 않고 읽은 독자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브루클린의 소녀』, 『파리의 아파트』, 『7년 후』, 『아가씨와 밤』,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인생은 소설이다』,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이게 내가 읽은 기욤 뮈소의 작품 목록이다.
그런데 묘한 게 있으니, 『센트럴 파트』보다 앞의 작품은 특별한 계기로 읽은 『7년 후』말고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도 대체로 어떤 작가의 작품이 좋으면 그보다 먼저 나온 작품도 찾아 읽는 경우가 많은데, 묘하게 기욤 뮈소는 그러질 않았다. 이유로 몇 가지를 들 수는 있다. 새로 나오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을 들 수도 있고, 소설 같은 경우 사서 읽기보다 대출해서 읽는 경우가 많은데, 기욤 뮈소의 경우에는 워낙에 인기가 많아 대출이 쉽지 않다는 점, 혹은 도서관의 기염 뮈소 소설이 손을 많이 타 겉보기에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게 무슨 이유냐 싶겠지만 그래도 내겐 유가 된다) 등등.
그런데 모처럼 기욤 뮈소의 작품을 되돌아가서 읽게 되었다. 네 번째 작품 『사랑하기 때문에』가 바로 그 대상이다. 최근 『사랑하기 때문에』가 새로 단장하고 2판이 나왔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내가 처음 읽은 기욤 뮈소의 작품 『센트럴 파크』처럼, 그리고 다른 많은 작품처럼 뉴욕이 배경이다. 기욤 뮈소에게 뉴욕이란 어떤 장소인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나름대로 드는 생각은 있다. 감각적인 도시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익명성의 도시가 뉴욕이다. 사람들은 성공을 꿈꾸고, 또 성공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도시이기도 하다. 가장 상징적인 도시. 기욤 뮈소의 주인공들은 이 도시에서 꿈꾸고, 성장하고, 사랑하고, 상처 입고, 또 극복한다.
이 글의 맨 앞에 인용했듯이 세 사람이 있다. 이들은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5년 전 딸이 실종되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노숙자가 되어 방황하는 전직 정신과 의사 마크, 엄마를 죽음으로 밀쳐낸 살인자를 찾아 죽이고자 무작정 뉴욕을 찾은 열다섯 소녀 에비, 재벌 상속녀로 방황을 거듭하는 앨리슨. 이들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서로의 과거를 고백하며, 상처를 그대로 드러낸다.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것은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두 사람이 더 있다. 마크의 어릴 적부터의 친구이자 역시 정신과 의사인 커너, 마크의 아내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니콜. 사실 그들의 상처가 앞의 세 사람보다 적다고 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절대 잊을 수 없는 과거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딸도 잃고, 남편마저 잃었다. 그들 역시 괴로워하고, 방황하지만, 무너지지는 않는다.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의 사람들과 역시 상처받았지만 겨우 버텨나가는 이들은 어떻게 그들의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이미 엮여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또 실제로도 그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풀릴 것인가? 이게 이 소설이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고, 기욤 뮈소는 독자들을 궁금증을 쌓고 또 쌓도록 한 다음 한꺼번에 풀어내 버린다. 끝까지 아슬아슬함을 놓고 있지 않아 끝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데, 어찌된 상황인지를 보여준 다음에도 그 다음의 결말을 궁금해하도록 하는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