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의 현혹

앨런 홀링허스트, 『아름다움의 선』

by ENA

앨런 홀링허스트는 이 작품 『아름다움의 선』으로 2004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사회적 소수자이면서 최상층의 일원으로 한 발 걸쳐 살아가는 인물의 눈에 비친 1980년대 영국 사회의 실상을 촘촘하게 그려냈다. 사회 비판 소설이면서, 한 청년의 성장 소설이다.


닉 게스트. 성 자체가 그대로 ‘손님’이다. 그는 영국 최상류층의 문화를 접하면서 살아가지만, 애초부터, 그리고 결국에는 손님이었다(앨런 홀링허스트는 이런 식의 이름을 가지고 어떤 의미를 두는 경우가 있나 본데, 『수영장 도서관』에서도 주인공들의 이름인 찰스와 윌리엄이 당시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 2위의 이름이었다). 옥스퍼드대학을 나왔지만, 중산층 출신의 닉이 처지는 ”양쪽 어느 곳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209쪽)라거나 ”받아들일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한 요소“(427쪽)와 같은 표현으로 설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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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대처 수상의 보수당이 대승을 거두며 집권 2기를 맞는 1983년에서 시작한다. 그 즈음부터 닉은 초선 하원의원이 된 제럴드 페든의 대저택에 머물게 된다. 제럴드의 아들 토비는 옥스퍼드 시절의 친구이면서 닉이 짝사랑하는 상대였다(토비는 동성애자가 아니었기에 동성애자인 닉에게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가족과 손님 사이의 불안정한 기거는 4년 동안 이어진다. 4년 후 제럴드는 아슬아슬하게 재선되지만, 부정부패에 휘말리면서 위기를 겪는다. 그 와중에 조울증에 걸린 딸 캐서린의 폭로로 제럴드의 외도, 닉의 동성애가 폭로되면서 닉은 저택을 떠나게 된다.


패든 가(家)의 저택에 기거하는 닉의 행태는 이율배반적이다. 제럴드의 정치 성향에 동의하지도 않으면서도(투표도 그에게 하지 않는다), 그의 최상류층의 생활과 문화에 편입되어 있는 자신을 자부한다. 상류층의 내적 모순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고, 그것들이 눈에 띠는 데도 굳이 파고들지 않는다. 그들의 곁에 머물면서 그들로부터 누릴 수 있는 안락함과 즐거움에 만족한다. 계급적으로 기회주의적인 부르주아 그 자체인 셈이다(말하자면 부르주아가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닉의 안락함과 즐거움은 결국엔 파탄 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바로 성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이다. 그의 성 정체성은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가 머물고자 하는 세계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은밀하게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폭로되는 순간 비난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그런 것이었다. 자신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이상 눈감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문제로 떠오른다면 기꺼이 내쳐버리는 존재였다(부르주아가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 게, 부르주아로서의 계급적 한계 때문이라기보다는 성소수자라는 폭로 때문이라는 게 아쉽긴 하다).

닉은 동성애자로서도 상당히 극단적인 상대를 만난다. 첫 상대인 리오는 유색인종의 이민자 출신이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집안이었다. 그와 헤어진 후 만난 이는, 같은 옥스퍼드 출신이지만 대학 시절에는 가까이 지내지 않았던 와니였다. 그는 레바논 출신이면서 슈퍼마켓 체인을 가진 대재벌의 아들이었다. 어느 쪽이나 자신의 아들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집안이었지만, 인정할 수 없는 데에는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에이즈에 걸려 죽거나 죽어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태도도 서로 다르다.

제목 ‘아름다움의 선’은 동성애자로서의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국의 화가 호가스의 그림에서 가져온 말이기도 하고, 와니와 닉이 함께 창간하여, 창간호로 끝나고 마는 잡지의 제목 ‘오지(ogee)’와도 연결이 된다. ‘오지’는 건축 용어로, 두 개의 곡선이 하나의 접점에서 반대 방향으로 교차하는, 반(反)곡선 아치를 뜻한다고 되어 있다. 찾아보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양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한쪽에서는 헤어지면 바로 곁에서는 만나고 있는 문양이다. 서로 접하지만 일치할 수 없는 선들...


첫 작품 『수영장 도서관』보다는 성애 장면이 훨씬 줄었고, 훨씬 덜 노골적이다. 물론 이 작품의 묘사만으로도 역겹다 할 이도 분명 있겠지만, 『수영장 도서관』도 이성애자가 읽기에는 전혀 성(性)적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아름다움의 선』은 말할 것도 없다. 『수영장 도서관』은 분명 퀴어 소설이고, 『아름다움의 선』도 그렇게 분류할 수 있겠지만, 『수영장 도서관』과는 달리 여기서 동성애자는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하나의 장치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바로 이 점. 특수한 존재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했기에 이 소설에 맨부커상이 주어졌을 거라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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