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현대 체코 작가로는 밀란 쿤데라만 알고 있었는데... 보후밀 흐라발을 알게 되었다. 김유태의 『나쁜 책』을 통해서다. 1968년 프라하의 봄에 이은 소련의 침공 이후 1989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었음에도 체코를 떠나지 않았고, 체코어로 글을 썼다(『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그렇지만 작품은 지하출판을 통해 유통되었다).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로 망명해서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것과 대비된다(그래서 밀란 쿤데라가 더 유명해지긴 했지만).
1977년 발표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흐라발이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사랑한다고 한 소설이다. 겨우 130쪽 정도로 얄팍한 소설이지만, 내용만큼은 묵직하다. 마치 유치환의 시(詩) <기발>에서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뒤집어 놓은 듯한 제목은 주인공 한탸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압축기가 돌아가는, 시끄러운 지하실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서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다. 그리고 그 고독을 견디게 하고,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다.
책은 한탸를 구해 낸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에는 한탸가 구해낸 것이 바로 책이다. 지하실로 쏟아져 온 종이 더미에서 한탸는 책들을 구해낸다. 그 책들은 자신의 방으로 옮기고, 읽는다. 자신이 파괴해야 할 대상이 구원과 숭배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그렇게 수많은 책을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든 한탸는 현자가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의 서 있는 자리를 절대 잊지 않는다. 아니 잊지 않으려 한다. 소설 맨 첫머리의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를 반복하는 이유다. 그가 책을 통해서 수많은 현명한 이들의 지식을 습득하고, 스스로 깨달았음에도 그는 폐지를 압축하는 노동자인 것이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기에 새로운 압축기가 나와 자신의 역할이 사라질 위기 속에서 스스로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 삶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한탸가 폐지 더미에서 찾아낸 책을 통해서 현자가 되었다고 했다. 책은 분명 한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주고, 지혜를 갖추도록 했지만, 결국엔 힘이 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방에 무너질 듯 쌓아놓은 책더미가 “스스로 걸어놓은 다모클레스의 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존재의 위기의 순간에는 책이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신봉했던 책들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113쪽)
책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결국엔 현실적인 힘이 되지 않은 책에 한탸는,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나약한 존재에 대한, 어떤 위로, 위안일까? 혹은 나라는 힘없는 존재, 그러니까 책과 비슷한 존재를 인지하고 버티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일까? 혹은 당위성에 대한 위선적 옹호일까?
고민을 하는 책은 ‘위험하다’. 이 책이 위험했던 이유이고, 흐라발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던 이유다. 그리고 지금 이 소설이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소설에는 느닷없이 한국이 등장한다.
“‘안 돼, 넌 그럴 수 없어, 단 한 권의 책도 펼쳐볼 권리가 없어, 잔혹한 한국 형리처럼 냉정해야야 해’라고 쉴새없이 나 자신을 타일렀다.” (98쪽)
- 흐라발이 ‘한국 형리’를 잔혹함의 대표로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