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만든 배신자들

이준호, 『반역자와 배신자들』

by ENA


14인의 반역자, 또는 배신자라 불린 이들이 있다. 이들 모두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하여 그 길을 걸었다(전쟁은 수많은 배신자와 반역자를 만들 수밖에 없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반도에서 살아가는 보통 독자의 견문으로는 낯선 인물들이 많다.


적어도 이름만큼은 들어봤던 이들은 비시 괴뢰 정부의 수반이었던 페탱과 ‘도쿄 로즈’라 불렸던 일본계 미국인 다키노, 그리고 간디의 비폭력 투쟁과 대립하며 인도 무장독립투쟁을 주장했던 찬드라 보스 정도다. 그렇다면 나머지 인물들은 그저 그런 역사의 부스러기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었나? 아니다. 읽어보면 이들이 조국의 반역자, 배신자라 불렸을 정도라면 그 위치가 상당했고, 영향력도 대단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논란이 되는 인물도 적지 않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 2차 세계대전이지만, 그 결과를 몰랐기에 어지러운 행보를 보였던 인물들을 보면서 역사가 절대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반역자, 배신자라고 뭉뚱그리고 있지만, 이들을 이렇게 한 묶음으로 묶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층위를 지니고 있다(이 역시 역사가, 그리고 그 역사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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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라고 할 수 없는, 그래서 명예회복이 된 이들이 있다. 앞서 얘기한 도쿄 로즈 다키노와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그런 인물들이다. 물론 그들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선택은 어느 한쪽에는 불쾌하거나 배신이라 불릴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분명 희생양이었다. 저자는 페탱을 이들과 함께 놓고 다루고 있지만...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역시 이것도 페탱이라는 인물을 평가하는 데 있어 복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신념에 찬 배신과 반역도 있다. 매국노의 동의어가 된 노르웨이의 크비슬링과 벨기에의 파시스트 레옹 드그렐 같은 인물이다. 그들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품고 있었고, 그래서 그것을 실현시킬 방도로 나치와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나치와 동일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주의와 신념은 지극히 편향된 것이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들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는 가당치 않다.


방도로서 반역과 배신의 길을 간 인물도 있다. 대(大)세르비아를 주창하며 티토와 대립하고, 체트니크를 이끌었던 드라골류브 드라자 미하일로비치와 우크라이나 무장투쟁을 이끌면서 많은 폴란드인과 유태인을 죽음으로 몰고간 스테판 반데라 같은 인물이다. 이들의 공과가 그들이 속한 민족과 그렇지 않은 쪽에서 보기에 너무나 명확하기에, 세르비아에서는, 우크라이나(일부)에서는 영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들을 보면 영웅과 배신자를 가르는 간격은 매우 좁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인물로는 인도의 수바스 찬드라 보스가 있다. 그는 간디나 네루에 가려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2차 세계대전 후반 일본에 기대려 했던 것 때문에 평가가 달리 내려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의 무장 투쟁은 간디의 비폭력투쟁과 함께 인도 독립운동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콜카타에 있는 국제공항 이름을 그의 이름 따 ‘네타지 수바스 찬드라 보스 국제공항’이라 지었을 것이다. 인도인들은 그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환멸에 따른 변절자’로 분류한 인물들은 어떻게 봐야할까? 스탈린에 환멸을 느껴 나치 독일의 편에 선 안드레이 블라소프, 나치와 히틀러에 환멸을 느껴 소련 측에 선 자이틀리츠-쿠르츠바흐 같은 인물들 말이다. 역시 독일의 장군으로 히틀러 암살에 앞장섰던 카를 프리드리히 괴르델러 같은 인물은? 그들은 한쪽에서 보면 분명 변절자였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 보면 이성적이고, 존중해야 할 인물이었을까?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용당했다. 배신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처신은 어찌해야 할까?


그런 면에서 자신과 가족을 향하는 압박과 보상의 유혹에 넘어간 카렐 추르다,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을 학대한 하임 룸코프스키 같은 인물은 평가가 쉬워, 오히려 안심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은 역사에서 잘 알지 못하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적지 않은 만족감을 준다. 그런데 그렇게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계속 곤란함을 간직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여기 인물들을 읽는 것은 매우 곤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과연 무엇이 배신인가?

그리고, 그렇다면 당신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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