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언 울프, 『책 읽는 뇌』 또는 『프루스트와 오징어』
정말 웬만해서는 구입한 책, 대여한 책은 끝까지 읽는데, 이 책은 몇 쪽을 읽다 손을 놔 버렸었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책장에 꽂혀 있는 모양을 볼 때마다 읽지 못한 책이란 자극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손놓은 책이란 인식이 다시 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소식을 들었다. 재출간했다는 소식. 제목을 『프루스트와 오징어』로 바꿔 달고.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출간할 정도라면...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러나 왜 제목이 ‘프루스트와 오징어’인지는 잘 파악이 되질 않았다. 이게 원제라는데(그리고 다시 읽다 보니 프루스트와 오징어라는 상징에 관한 이야기가 책 첫머리에 나오고, 그 부분은 읽었던 부분이었다).
다시 읽으니, 읽을 만했다. 아니,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던 시기에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그 후 언젠가는 그랬어야 하는 책이었다. 이렇게 공이 들어간 탁월한 책을 소화해내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울 지경으로(물론 지금도 100% 소화해냈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분은 다시 하나의 ‘책’이다. 그만큼 독립성이 강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그만큼 상당한 내용이 담겨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책, 내지는 독서의 역사다. 나열이 아니다. 어떻게 문자의 형태가 바뀌어 가면서, 우리의 뇌와 인식 체계가 바뀌어 가는지를 세밀하게 서술했다. 언어가 다르면 뇌의 인식 부위가 다르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문자 문화를 반대했다는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를 시대착오적, 그게 아니더라도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구식의 인간으로 낙인 찍지 않고, 왜 그런지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시 현재에 적용하고 있다. 그 적용은 3부에서 다시 이어진다.
두 번째 부분은 뇌가 책을 읽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 뇌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독서를 처음 시작할 때의 변화, 독서의 능력을 증가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자세한 것까지 이해하려면 뇌의 구조와 뇌과학의 방법론 등을 알아야 하지만, 전달하려는 바는 이해할 수 있다. 독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지만, 점진적인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뇌의 부품들이 연결된다. 책을 읽을 때 순식간에 일어나는 과정을 우리는 이제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다른 데 적용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적용의 하나가 세 번째 부분에서 이야기하는 난독증에 관한 내용이다. 뇌과학의 성과와 독서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난독증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지만 난독증을 분석하면 역시 뇌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저자가 난독증을 연구하게 된 것은 어쩌면 맏아들이 난독증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독서라는 주제를 뇌과학과 연관지어 연구하다보면 도달해야 할 데 중 중요한 곳이 거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독증의 원인도 한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좌뇌가 아니라 우뇌가 비정상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실상은 비정상적으로 발달이 아니라, 좌뇌와 우뇌가 거의 동일하게 발달해서 거의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인데, 정상이 좌뇌의 비대칭적 발달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된다. 그리고 많은 난독증 환자들이 이룩한 예술적, 기술적 성과들을 이야기한다. 책을 ‘잘’ 읽지 못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속하는 데 결정적인 흠이라면 난독증은 사라지거나 매우 작은 부분만 남아 있었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데 난독증을 가져오는 어떤 뇌의 변화가 인류에게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다는 단서를 잡는다. 애당초 책을 읽도록 만들어진 뇌는 없었던 것이다.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다.” 책의 첫 문장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읽는다. 단 6천 년 전에 벌어진 이 능력은 인간의 뇌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았지만, 뇌의 연결을 변화시켰고,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을 수 뇌만이 인간의 뇌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