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익, 『전염병』
이 소설이 2010년에 발표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수도 있다.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예견과 연결할 수 있는 소설은 무척 많다. 무시무시한 감염질환이 순식간에 퍼진다는 설정은 그렇게 선견지명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설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이런 소설이 달리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소설에서 이야기한 상황과 우리가 실제로 맞닥뜨린 상황을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은, 혹은 보고서는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대비하기 위한 어떤 조치를 촉구하지만, 언제나 현실이 앞서가기 마련인 것도 거의 진실이 가깝다.
그럼 이 소설에서의 상황은 얼마나 우리가 실제 경험한 것과 얼마나 비슷할까?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 북극에서 바이러스가 깨어나는 설정은 우리의 경험과 많이 차이가 난다. 또한 단 열흘 만에 거의 치사율이 100%에 이른다는 설정 역시 우리가 겪은 코로나 팬데믹과는 그 심각성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와중에 인간이 어떻게 드러나느냐이다. 소설이 예언서가 아닌 바에야 상황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모습을 얼마나 본질적으로 다루느냐가 중요한 평가 포인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중 소설인 만큼 얼마나 흡인력이 있는지도, 실제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도 중요한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평가를 받을 만한 요소가 많다. 우선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의 심리 변화다. 의연하던 사람이, 자신이, 혹은 가족이 걸렸을 때 무너져 내리고, 지극히 이기적으로 되는 모습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또한 그 인물들이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는 점도 상당히 인상이 깊다. 상당히 많은 것을 고려하고 준비한 소설이라는 얘기다.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독자를 붙잡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상 깊다. 어렵지 않은 문장이기에 가독성이 높고, 그래서 몰입도도 높다. 그리고 생명과학이나 의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이 분야에 대해서 적지 않은 공부를 한 흔적도 있다. 내용을 그냥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은, 설명이 충분히 쉬우면서도 전공자가 보기에도 그다지 흠이 없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노력의 흔적이다.
또 한 가지는, 이 소설의 부제인 “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과 관련된 부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읽으면서도 한동안 왜 부제가 이런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소설 후반부에 들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항체를 가진 사람이 필요하고, 그런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질병을 널리 빨리 퍼뜨려야 한다는 궤변이 바로 그 ‘계산법’이었다. 실제 이런 주장은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도 있었다. 스웨덴의 실험이 대표적이다(개인적으로는 그런 주장을 들은 적도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웨덴의 피해가 적극적으로 봉쇄를 단행한 국가에 비해 적다는 데이터도 본 적이 있다(단편적인 거라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는 판단하지 못했다). 작가는 이런 접근법을 생각해냈고, 그리고 그것의 부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해서 보여줬다. 어쩌면 가장 예견력 있는 설정이 이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결정적인 부분에서 무리한 점이 있다. 세균에서 바이러스가 진화했다는 것은 가설로서 제시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가설이 있는 것으로도 안다. 그런데, 바이러스에서 세균으로의 역진화가 실시간으로 일어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저 약간의 존재 조건이 다른 것이 바이러스와 세균이 아니다. 근본적인 존재 방식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세균의 유전체 크기 차이가 얼마인데... 바로 이 설정을 통해서 전염병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인데, 여기서 무리했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