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맥브라이드, 『하늘과 땅 식료품점』
1972년 펜실베니아 포츠타운의 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땅을 파헤치다 오래된 우물에서 오래된 유골이 발견된다. 우물 안에서는 유골은 빨간색 의상 조각과 함께 있었고, 벨트 버클 하나와 펜던트도 발견됐다. 근처 사는 나이 든 유대인 말라기에게 펜던트를 내밀자 그는 메주자라고 답했다. 말라기는 다음 날 사라졌고, 이야기는 그 유골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이어진다.
유대인, 유색인, 즉 흑인, 그리고 백인이 살고는 있지만,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며 살아가는 1930년대 치킨힐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여기서 유대인과 흑인은 백인들에 의해 핍박받는 존재들이다(지금 생각하면 유대인이? 이러겠지만, 그땐 그랬다). 핍박받는 존재들은 어디서나 편견에 휘둘리고, 불합리한 처분을 받는다. 핍박하는 존재는, 오히려 자신들이 밀려나고 있다고 여기고, 자신 집단의 영광과 개인적 이득을 지키기 위한 편견과 불합리를 당연하게 여긴다.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치킨힐이라는 마을에 1930년대 미국 사회의 모순을 응집시켰다. 그리고 그 모순과 대립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사람들의 선한 의지와 그것의 분출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탁월한 방식으로.
이 소설은 우선 여러 부류의 인간들을 대비시키고 있다. 특히 선과 악을 뚜렷하게 대비시킨다. ‘선’의 대표는 절름발이 유대 여인 초나이고(제목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초나가 아버지때부터 운영하던 가게 이름이다. 적자를 보면서도 흑인들과 유대인들을 위해 운영하던), ‘악’의 대표는 백인이자 의사이면서 역시 절름발이인 닥 로버츠다. 그 사이에는 여러 인물들이 놓이지만, 초나 쪽의 사람들은 주로 핍박받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선한 의지는 주로 피동적으로 서서히 드러난다. 반면 ‘악’의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소수다. 분명한 악의 인물은 닥 로버츠말고는 펜허스트 수감시설의 ‘사람의 아들’ 정도다. 말하자면 권선징악의 타겟이 명확한 셈인데, 결국은 그들 둘만이 명백하게 징벌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분명한 권선징악의 구조를 갖는다. 그런데도 유치하지 않은 이유는 선과 악 사이에 놓은 많은 사람들의 사연 때문인 듯하다. 작가는 주인공이 명확하지 않을 정도로 각각의 인물들의 사연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사연이 각기 펼쳐지고, 그것들이 하나로 모이는 구조다. 그리고 누군가 영웅적으로 악을 징벌하는 구조도 아니다. 여러 선한 의지와 태도가 모였을 때 자연스레 그런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소설의 이야기는 짜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거창하게 ‘민중의 승리’라고 선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귀머거리 흑인 소년 도도는 펜허스트 수감시설에서 탈출하여 나름 행복한 삶을 살다 죽는다. 초나의 남편 모셰와 그의 사촌 이삭은 장애 아동을 위한 ‘초나 캠프’를 만든다. 도도를 직접 탈출시킨 네이트와 그의 아내 애디는 다시 만나 역시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이는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집단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일화적인 것이다. 분명 사회는 바뀌어가고 있었고, 작가는 그것을 매우 섬세하게 포착하고, 적극적인 문제 의식을 가지고 표현해냈다. 하지만 그런 사회의 변화를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은 미국 사회의 한계라고 본 것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인물, 초나의 비극적인 죽음이 바로 그런 작가의 좌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그녀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 약속의 땅에서 그들이 얻은 풍요로움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자신들의 뿌리 깊은 전통과 역사가 10초짜리 광고로 전락하고, 의미 없는 휴일에 애국심 높이는 스포츠 경기나 내보내며 선조들의 험난한 투쟁과 자랑스러운 과거는 잊고 현란함에만 열광하는 미래.
병원 복도를 따라 움직이는 이 사람들의 자부심을 으깨 역사의 작은 얼룩처럼 흩뿌려 놓고, 핫도그만큼이나 대중적이고 조그만 기계로 사람들에게 정신적 쓰레기 더미를 먹이게 될 미래.
죽어가던 초나는 핫도그가 아니라 미래를 느낀 건지도 몰랐다. 사람들 주머니 속에서 잠겼다 풀렸다 하며 그 어떤 핫도그보다 더욱 유혹적이고 강력하고 위험한 물건이 자유를 가장한 억압인 줄도 모르고 아이들이 열과하고 중독되고 마는 미래.” (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