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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분노가, 비참함이 평원에 펴져 있다

코맥 매카시, 『평원의 도시들』

by ENA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의 작가 코맥 매카시의 이른바 ‘국경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국경 3부작’에는 들어가지는 않지만 다음의 작품을 예견케 하는 『핏빛 자오선』을 발표하고, 1992년에 『모두 다 예쁜 말들』, 1994년에 『국경을 넘어』, 그리고 1998년에 『평원의 도시들』을 발표함으로써 국경 3부작을 완성했다(『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는 각각 2005년, 200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나중에 발표한 작품일수록 평단과 대중들의 관심을 점점 더 많이 받는, 드문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평원의 도시들』에서는 『모두 다 예쁜 말들』의 존 그래디 콜과 『국경을 넘어』의 빌리 파햄이 만나고 있다. 존 그래디는 열아홉 살, 빌리는 스물여덟 살. 국경 근처 도시 엘패소 근처 목장에서 함께 거의 형제처럼 지낸다. 서로 상처로 점철된 지난날을 일과 우정으로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국경을 이루는 강 건너 멕시코의 도시 후아레스로 놀러 갔다 존 그래디는 어린 창녀 막달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막달레나라니...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막달레나는 빚에 팔려 왔고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매음굴에서 몸을 팔고 있는 신세였다. 사랑에 빠진 존 그래디는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고, 매음굴에서 탈출시킬 계획을 짠다. 그의 성품은 겉보기에 멀쩡한 말을 보고 말굽에 이상이 있음을 알아차릴 정도로 세심하고, 송아지를 습격한 들개 떼를 소탕한 후 강아지를 구출하여 키울 만큼 정이 많다. 아마도 그런 세심함과 상처 받은 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사랑에 빠지고,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결국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막달레나도 존 그래디도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시간을 훌쩍 지나 이제 일흔 여덟이 된 빌리를 비춘다. 그는 바로 목장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무려 50년을. 그 시간 동안, 멕시코에서 죽은 동생과 존 그래디를 그리워한 것일까? 어쩌면 슬픔과 참담함이 습관이 되어 그를 떠돌게 만들었을 것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내면화되어 버린 슬픔은 정작을 방해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그의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겠지만, 과거 이야기의 주변 이야기처럼, 산란되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너무나도 강력한 기억이 다른 이야기들을 밀어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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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존 그래디도 빌리도, 그들의 감정을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두 대화와 행동으로 짐작케 한다. 슬프다 하지 않고 슬픔을 표현하고, 분노한다 표현하지 않고 분노를 표현하고, 비참하다 하지 않고 비참함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그 감정이 온 평원에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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