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수, 『태양을 만드는 사람들』
’태양을 만든다‘. 거창한 것 같다. 당연한 거창한 일이다. 짐작은 간다. 지구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이용하는 에너지 전부를 공급하는 게 태양이니, 바로 그 태양의 원리를 이용한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일일 터.
그렇다면 태양이 어떻게 수십 억 년 동안 타올랐으며, 앞으로도 수십 억 년은 거뜬하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야기는 바로 그 이유를 밝혀내는 데서 시작한다.
2005년 3월 6일, 뮌헨. 한 물리학자의 부고를 듣는 것으로 장면이 시작된다. 1940년대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으며, 1967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한스 베테.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무엇을 밝혔는가? 짐작할 수 있지만 태양의 비밀을 밝혀냈다. 질량이 에너지라는 것을 아이슈타인이 밝혔고, 그것을 이용해서 원자폭탄을 만들었지만 태양이 어떻게 그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지는 한스 베테가 밝혀냈다. 바로 핵융합. 수소끼리 충돌해서 헬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미세하게 감소하는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원자폭탄이 핵분열을 이용하는 것이니, 정반대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물론 핵분열이나 핵분열이나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한다는 원리는 동일하다).
핵융합으로 막대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그것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이 상용화되기 시작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풍부한 재료(수소를 재료로 삼으니)를 이용해서 원자력 발전보다 위험이 적은 발전 방식을 개발하고자 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에 인공적인 태양을 만들어내려는 연구는 여러 국가에서 거의 동시에 진행됐다. 미국은 물론, 영국, 그리고 소련. 각국의 아이디어는 비슷했지만, 중간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금 다른 방식을 채택했고, 서로 협력과 경쟁했다. 결국 맨 처음 핵융합을 통해 생성되는 플라즈마를 자기장 안에 가두는 것을 성공한 것은 소련이었다. 1957년의 일이었다. 소련의 연구진들이 명명한 실험 기구, 토카막(Takamak)은 다른 나라에서도 채택하게 되었고, 이 연구의 보통 명사가 되었다. 바로 핵융합을 이용하여 인공 태양을 만드는 일은 토카막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
이후에는 이를 크게 만들고, 상용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그 결과가 ITER 건설이다. 현재 프랑스에 건설된 국제 핵융합 실험로의 약자로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이나 아르테미스 계획과 맞먹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다. 연구자들은 이 사업을 통해 핵융합 기술을 통해 실제 사용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을 확인하고자 한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나용수 교수는 1부에서는 한스 베테에 빙의해서, 2부에서는 토카막을 개발하는 소련 연구진의 일원이 되어 연구의 흐름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단지 삭막하게 무슨 일이 있었고, 그것의 원리는 무엇이고, 어떤 역경을 뛰어넘어 성과를 이뤘는지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바로 옆에서 함께 일하는 느낌을 가지고 쓰고 있다. 그런 방식을 통해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1부와 2부 내용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느낌도 든다(물론 이런 과학 내용만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지는 않겠지만). 1부, 2부의 내용만 가지고도 이 일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해결해야 했던 많은 문제,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다(이 얘기는 3부 이후의 내용이 이런 흐름에서 조금 벗어나는 아쉬움이 따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낯선 것을 알게 되는데 거부감이 거의 없다.
핵분열을 이용한 발전소는 금방 만들어졌다. 그런데 핵융합을 통한 기술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상용화의 시점을 정확히 못 박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는 얘기다. 그리고 다른 면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게 상용화되어 핵융합 발전소가 건설되어 제2의 태양이 떠오른다면 우리의 지구는 비로소 구원받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