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100쪽도 되지 않는 소설.
소설의 길이만큼이나 이야기도 복잡하지 않다.
아일랜드 시골. 한 소녀가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여름 몇 달을 먼 친척의 집에서 보낸다는 얘기. 사실 이게 전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닌 소설이다.
다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채 집안 일을 책임져야 하는, 피곤에 지친 어머니와 모든 것에 무심한 아빠를 떠나 꽤 넉넉한 친척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진 소녀는 자신의 집과는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 여름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안온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시내로 나가 새 옷을 산 날. 동네에 누군가 죽었고, 혼자 있을 수 없어 초상집에 따라간 소녀는 다른 이로부터 킨셀라 부부의 아픔을 알고 만다. 그가 그 동안 조금 큰 남자애 옷만 입었던 이유,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소녀가 연결 짓지 못했을 뿐이었다. 아저씨,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우물에 비친 소녀의 모습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는데,
“숨을 쉬자 내 숨결이 고요한 우물 입구에 가 닿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내 숨소리를 들으려고 잠깐 동안 좀 더 세차게 숨을 쉰다.
...
이제 태양이 기울어 일렁이는 물결에 우리가 어떻게 비치는지 보여준다. 순간적으로 무서워진다. 나는 아까 이 집에 도착했을 때처럼 집시 아이 같은 내가 아니라, 지금처럼 깨끗하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주머니가 지키고 서 있는 내가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전날, 소녀는 첫날 킨셀라 아주머니와 함께 갔던 우물에 혼자 갔다가 우물에 빠진다. 우물은 과거의 나를 잊고 새로운 나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새로운 나는 거기에 머물고 싶지만, 결국은 떠나야만 한다. 현실과 꿈은 경계가 흐릿하지만 넘어서는 것은 힘든 일이다.
클레어 키건은 펜을 가지고 꼭꼭 눌러쓰듯 소설을 쓴다. 아마 고치고, 또 고쳤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문장을 덜어내고, 또 덜어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한 문장을 읽고 생각하고, 한 문단을 읽고 생각하고, 끝까지 읽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은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