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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22. 2024

푸른 들판 너머 바라보는 아일랜드 풍경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의 작품들을 거슬러 읽게 되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맡겨진 소녀》로, 그리고 《푸른 들판을 걷다》까지. 《푸른 들판을 걷다》는 클레어 키건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일곱 편의 단편이 있다. 이후 작품들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나 《맡겨진 소녀》에서 감탄하게 되는 여백 가득하고, 사려 깊은 문장은 이미 여기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모든 것을 다 얘기하지 않고도 독자들이 읽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명백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하더라도 느낌으로도 분위기를 알 수 있다면 되는 것이리라. 숨을 고르고 생각한 만큼 저자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은 것까지 알 수 있단 말이리라. 




그런 문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작품들의 분위기는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에서 작가는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남성을 등장시키고 비판하고 있다. 그 남성들은 권위적이거나 무능하다. 혹은 권위적이면서 무능하다(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데 옮긴이도 이것을 언급하고 있다). 감동보다는 비판이나 야유 쪽에 가깝다. 


<작별 선물>에서 딸을 성폭행하고, 떠나는 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아버지. 

좋아하는 여인을 끝내 잡지 못하고 떠나보내면서 결혼식을 집도하는 <푸른 들판을 걷다>의 사제. 

<검은 말>의 브래디 역시 사랑하는 여자를 이기적으로 대하다 끝내 떠나보내고는 그걸 후회하며 살아간다. 

<삼림 관리인의 딸>의 디건은 어떤가?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을 아내로 삼고, 딸이 자신의 친자가 아닌 줄 알면서도 끝내 아닌 척 살아간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약혼녀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부하를 과도하게 통제하며 가학적 쾌감을 느끼는 <굴복>의 중사 역시 그런 남성 중 하나다. 

<퀴큰 나무 숲의 밤>의 스택 역시 지극히 수동적인 남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저 알아봤다는 <물가 가까이>에서도 주인공인 대학생의 양아버지는 권위적이기 그지없고, 아들은 거기에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못한다. 


반면 여성들은 다르다. 

<작별 선물>의 딸은 아버지의 말을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사고 떠난다. 떠나겠다고 말하면서 결코 떠날 수 없을 것을 예감하는 오빠 유진과는 다르다. 

<삼림 관리인의 딸>에서의 어머니나 딸 역시 아버지나 아들들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스스로 숨어 지내는 삶을 청산하고 당당하게 너른 세계로 나가는 <퀴큰 나무 숲의 밤>의 마거릿도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보면 클레어 키건이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지향하려 했는지, 초기의 작품 세계가 뚜렷해 보인다. 그게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이어지는 맥락도 짐작할 수 있다. 아일랜드의 구식 세계를 비판하면서도,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과 사람들을 긍정해가는 모습이다. 세상을 한 가지의 모양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클레어 키건의 절제되고 아름다운 문체는 아일랜드의 황량함과 더불어 힘들게 살아오면서도 끝내는 버티어낸 아일랜드인을 푸른 들판 너머 바라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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