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의 작품들을 거슬러 읽게 되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맡겨진 소녀》로, 그리고 《푸른 들판을 걷다》까지. 《푸른 들판을 걷다》는 클레어 키건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일곱 편의 단편이 있다. 이후 작품들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나 《맡겨진 소녀》에서 감탄하게 되는 여백 가득하고, 사려 깊은 문장은 이미 여기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모든 것을 다 얘기하지 않고도 독자들이 읽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명백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하더라도 느낌으로도 분위기를 알 수 있다면 되는 것이리라. 숨을 고르고 생각한 만큼 저자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은 것까지 알 수 있단 말이리라.
그런 문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작품들의 분위기는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에서 작가는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남성을 등장시키고 비판하고 있다. 그 남성들은 권위적이거나 무능하다. 혹은 권위적이면서 무능하다(읽으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데 옮긴이도 이것을 언급하고 있다). 감동보다는 비판이나 야유 쪽에 가깝다.
<작별 선물>에서 딸을 성폭행하고, 떠나는 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아버지.
좋아하는 여인을 끝내 잡지 못하고 떠나보내면서 결혼식을 집도하는 <푸른 들판을 걷다>의 사제.
<검은 말>의 브래디 역시 사랑하는 여자를 이기적으로 대하다 끝내 떠나보내고는 그걸 후회하며 살아간다.
<삼림 관리인의 딸>의 디건은 어떤가?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을 아내로 삼고, 딸이 자신의 친자가 아닌 줄 알면서도 끝내 아닌 척 살아간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약혼녀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부하를 과도하게 통제하며 가학적 쾌감을 느끼는 <굴복>의 중사 역시 그런 남성 중 하나다.
<퀴큰 나무 숲의 밤>의 스택 역시 지극히 수동적인 남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저 알아봤다는 <물가 가까이>에서도 주인공인 대학생의 양아버지는 권위적이기 그지없고, 아들은 거기에 직접적으로 반박하지 못한다.
반면 여성들은 다르다.
<작별 선물>의 딸은 아버지의 말을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사고 떠난다. 떠나겠다고 말하면서 결코 떠날 수 없을 것을 예감하는 오빠 유진과는 다르다.
<삼림 관리인의 딸>에서의 어머니나 딸 역시 아버지나 아들들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스스로 숨어 지내는 삶을 청산하고 당당하게 너른 세계로 나가는 <퀴큰 나무 숲의 밤>의 마거릿도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보면 클레어 키건이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지향하려 했는지, 초기의 작품 세계가 뚜렷해 보인다. 그게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이어지는 맥락도 짐작할 수 있다. 아일랜드의 구식 세계를 비판하면서도,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과 사람들을 긍정해가는 모습이다. 세상을 한 가지의 모양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클레어 키건의 절제되고 아름다운 문체는 아일랜드의 황량함과 더불어 힘들게 살아오면서도 끝내는 버티어낸 아일랜드인을 푸른 들판 너머 바라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