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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Sep 25. 2024

진심이 전해지다

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러 시리즈 중 ‘녹나무’ 시리즈는 2020년에 첫 편(《녹나무의 파수꾼》)이 나왔고, 《녹나무의 여신》이 두 번째 작품이다. 앞으로 더 나올지 어쩔지는 모른다. 그래서 시리즈란 표현을 쓰지 않고 속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희한하게 《녹나무의 파수꾼》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녹나무에 대해서만큼은 선명하다. 가끔 생각나기도 했다. 어디선가 ‘녹나무’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떠오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진심을 다해 기념하면, 후에 그 진심을 다한 사람이 그 마음을 전해주는 녹나무. 




《녹나무의 여인》은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녹나무의 파수꾼이 된 나오이 레이토가 신사 경내를 빗질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세 명의 오누이가 찾아오고 어설프게 프린트해서 스테이플러로 박아놓은 시집을 팔아달라고 한다. 맏이인 여고생 유키나가 쓴 시집의 제목은 《헤이, 녹나무》다. 시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 


한 남자가 시집을 돈도 내지 않고 가져간다. 구메다 고사쿠라는 사내다. 부유하게 살며 오냐오냐 하며 커오다 집안이 기울며 무위도식하며 살아간다.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곤경에 처한 레이토를 구해내고 녹나무의 파수꾼으로 일하도록 한 야나사가와 치후네가 있다. 무척이나 영리했던(지금도 영리하지만) 인지장애를 겪고 있다. 


뇌종양을 앓는 중학생 소년 하류 모토야가 있다. 그는 놀랄만한 그림 솜씨를 지니고 있지만, 잠만 자고 나면 전날의 기억은 싸그리 사라진다. 그래서 매일매일 일기를 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일기만으로 짐작할 뿐이다. 


《녹나무의 여인》은 사람들이 마음을 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그 과정은 녹나무를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진심은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전해진다. 유키나와 모토야가 함께 만든 그림책은 그 결과물이다. 사람들이 미래가 어떤지 알고 싶어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란 걸 그 어린 학생들이 모진 환경 속에서 깨닫고, 그 진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전혀 독하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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