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히가시노 게이고는 새로운 수수께끼 풀이 방식으로 시도하기 위해서 ‘블랙 쇼맨’을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고 했다. 블랙 쇼맨, 즉 전직 마술사 가미오 다케시가 처음 등장하는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도 그랬고, 이어지는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도 그랬다. 형사의 방식이 아니라 적당히 속임수를 쓰고, 넘겨짚으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면서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나간다.
세 편의 중편을 엮은 《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역시 마찬가지다. 블랙 쇼맨 가미오 다케시는 재산을 노리고 죽은 아들의 재산을 노리는 전처의 꼼수를 파헤치는데, 집안에 놓인 작은 물건으로부터, 전화를 할 때의 작은 움직임으로부터 진실의 단서를 찾아낸다. 너무 엄격한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살로 위장한 한 여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직인 마술사의 실력을 이용하고, 단골 손님의 잊고 있는 꿈을 다시 찾도록 하는 데는 몇 차례의 연극을 기획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세 편을 연결하는 고리가 ‘운명’인 게 분명하다. 블랙 쇼맨이 아닌 또 다른 주인공이 모두 여성인데, 그들은 운명에 그저 순응하지도 그렇다고 스스로 적극적인 운명 파괴에 나서지도 못한다. 그 운명의 바퀴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굴리는 데, 그리고 지나온 자국을 뒤돌아서 바라보는 데, 블랙 쇼맨은 뛰어난 관찰력과 속임수(연극?)로 도움을 준다.
추리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있지만, 소설에 범죄는 없으며(물론 따지고 보면 법을 어긴 일들이 없지는 않지만) 모두 애틋한 사정을 지닌 이야기다. 처음 블랙 쇼맨이 등장할 때보다는 조금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한 축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