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 마사히코, 『망고와 수류탄』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https://blog.naver.com/kwansooko/220841723459)을 읽은 지 8년이나 지났지만, 책에 대한 느낌은 비교적 뚜렷했다. 게다가 ‘망고와 수류탄’이라니…. 이 매력적인 제목의 책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내용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소 달랐다. 애초에 예상했던 것은, 구술을 통해서 오키나와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이니만큼 그가 오키나와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배워야 할 것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런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이른바 ‘질적사회학’이라고 부르는, 혹은 ‘생활사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학문적 방법론에 관한 근거, 장점과 한계,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관한 내용이다.
그래서 약간 딱딱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학자들의 글을 길게 인용하기도 하고, 사회학 이론을 펼치기도 한다. ‘오랄 히스토리’, ‘라이프 스토리’, ‘라이프 히스토리’의 차이에 대해 길게 비교하기도 한다(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이런 이론적인 내용을 내가 굳이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런 이론에 매몰된 책은 아니다. 그건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학문의 방법론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을 읽고자 한다면 이 책은 꼭 그런 책이다. 어떤 글에서도 기시 마사히코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통계를 위주로 하는 ‘양적사회학’이 아니라 라이프 히스토리라는 생활사 조사 방법을 통해, 그리니까 사람과 만나 구술을 듣고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결국은 인간을 향한 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이론과 방법에 대한 내용도 어떻게 하면 그 목적을 잘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일환일 뿐이다.
기시 마사히코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과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를 고민한다. 고민한다는 얘기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전화를 하고, 약속을 하는 단계에서부터, 구술을 받은 이후에 연구실로 돌아와 풀어쓰고, 해석하고, 다시 내용을 확인받고, 나중에 의도적이든 우연히든 만나 인사하는 단계, 아니 먼 훗날 그 사람의 소식을 듣는 순간까지도, 이 사회학의 과정에 포함시킨다는 얘기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며 그 이야기들에 담긴 공통적인 내용을 찾아내고, 혹은 독특한 내용을 통해 인간 사회의 특성을 알아낸다. 이러한 사회학 방법을 타당성이라든가, 비과학적이라든가 하는 말로 폄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망고도, 수류탄도, 푸딩도, 사슴벌레도, 바다의 밀가루도, 담배도, 코코아도, 어떻게 오키나와 사람들의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것들은 거의 항상 다른 사물로 치환되어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