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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26. 2020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

미셸 우엘벡, 《지도와 영토》

권위 있는 문학상을 탄 작품은 일단 안심하고 읽게 된다읽고 난 후에야 그 작품이 그런 상을 탄 작품이란 걸 알 때도 가끔 있지만대개는 그런 상을 탄 작품이라는 걸 알면서 읽게 된다사실 후광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어서 읽으며 어떤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고자 애를 쓰고또 그걸 쉽게 발견하지 못하면 내 읽기 능력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그런 상에는 영국의 맨부커상이 있고프랑스의 콩쿠르상이 있다(노벨문학상은 작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제외). 내가 읽은 작품 중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는 폴 비티의 배반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줄이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언 메큐언의 암스테르담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등이 있다(한강의 채식주의자도 포함시켜야겠다). 돌이켜보니 모두 괜찮은 작품들이었다믿을 만하다는 얘기다그런데 콩쿠르상은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프랑스의 소설가로 읽은 작가가 기욤 뮈소나미셸 뷔시 같은 대중작가라는 것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떤 편향 같은 게 존재하는 셈이다(작가가 다 대중작가지 또 다른 작가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콩쿠르상을 받은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를 읽으며읽고 나서 우선 든 생각이 바로 그런 에 대한 것들이다상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하지는 않을 수 없었다.

 

책 소개로는 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 소비사회와 현대예술에 대한 담론을 담은 소설이라고 되어 있다이 소개를 토대로 이 소설에 대해 파악해보자면, ‘한 예술가란 제드 마르탱이라는 예술가다소설은 제드 마르탱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그의 삶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첫 번째는 사진작가로 미슐랭 지도를 촬영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 시기두 번째는 사진에서 회화로 전환하여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그려 명성을 넘어 부()까지 거머쥐게 된 시기그리고 마지막 시기는 부와 명성을 얻은 이후 시골 마을에 은둔한 후 지인들의 사진과 피규어를 화학적으로 부식시키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식물의 영상과 겹쳐 놓는 비디오그램의 시기다이 시기들을 실제 시간과 비교하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작가는 그걸 크게 의식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면 소비사회의 현대예술은 뭘까단순히 미슐랭 지도를 찍은 사진여러 직업을 가진 인물을 그린 초상화가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고 부와 명성을 그에게 안겨줬다는 것 자체가 그걸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물론 거기에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있었지만사실 따지고 보자면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고또 그것들을 구매하는 이들은 어쩌면 허영심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엘벡은 그런 현대사회의 소비적 예술(말을 바꿔봤다)을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느닷없이 분위기가 달라지는 3부의 살인 사건은(놀랍게도 미셸 우엘벡이라는 소설가가 무자비한 살인을 당한다그런 심증을 굳히게 한다어떤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의 살인이라고 생각했지만결국은 돈 때문이었다(그것도 제드 마르탱이 미셸 우엘벡에 그려준 우엘벡 초상화). 현대사회의 예술은 결국 돈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도 없어지는 것일까세 번째 시기인생의 결론이 인물들과 문명의 이기가 부식되고 식물이 압승하는 장면이라는 점은 의미심상하다.

 

그런데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소설가 자신을 등장시킨다소설가를 대변하는 인물은 주인공인 제드 마르탱이어야 하고대체로 그런 셈인데조연으로 미셸 우엘벡이라는 유명했던’ 소설가를 등장시키고나중에는 그를 무참하게 살해시킨다소설가가 자신을 객관화시키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혹은 그런 상황에 재미를 느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또 그런 상황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보다 다층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작가는 사진 전시회의 제목으로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고 했다실제보다 그것의 표상이 더 흥미롭다는 얘기인데실제는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소설도 그렇다미셸 우엘벡은 분명 이 소설을 어떤 의미로 썼겠지만그걸 읽는 나에게 다가온 의미가 더 흥미로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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