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우엘벡, 《지도와 영토》
권위 있는 문학상을 탄 작품은 일단 안심하고 읽게 된다. 읽고 난 후에야 그 작품이 그런 상을 탄 작품이란 걸 알 때도 가끔 있지만, 대개는 그런 상을 탄 작품이라는 걸 알면서 읽게 된다. 사실 후광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어서 읽으며 어떤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고자 애를 쓰고, 또 그걸 쉽게 발견하지 못하면 내 읽기 능력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런 상에는 영국의 맨부커상이 있고, 프랑스의 콩쿠르상이 있다(노벨문학상은 작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제외). 내가 읽은 작품 중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는 폴 비티의 《배반》,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줄이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이언 메큐언의 《암스테르담》,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등이 있다(아,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포함시켜야겠다). 돌이켜보니 모두 괜찮은 작품들이었다. 믿을 만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콩쿠르상은?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프랑스의 소설가로 읽은 작가가 기욤 뮈소나, 미셸 뷔시 같은 대중작가라는 것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떤 편향 같은 게 존재하는 셈이다(작가가 다 대중작가지 또 다른 작가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콩쿠르상을 받은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를 읽으며, 읽고 나서 우선 든 생각이 바로 그런 ‘상’에 대한 것들이다. 상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하지는 않을 수 없었다.
책 소개로는 ‘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 소비사회와 현대예술에 대한 담론’을 담은 소설이라고 되어 있다. 이 소개를 토대로 이 소설에 대해 파악해보자면, ‘한 예술가’란 제드 마르탱이라는 예술가다. 소설은 제드 마르탱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그의 삶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사진작가로 미슐랭 지도를 촬영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 시기. 두 번째는 사진에서 회화로 전환하여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그려 명성을 넘어 부(富)까지 거머쥐게 된 시기. 그리고 마지막 시기는 부와 명성을 얻은 이후 시골 마을에 은둔한 후 지인들의 사진과 피규어를 화학적으로 부식시키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식물의 영상과 겹쳐 놓는 비디오그램의 시기다. 이 시기들을 실제 시간과 비교하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작가는 그걸 크게 의식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러면 소비사회의 현대예술은 뭘까? 단순히 미슐랭 지도를 찍은 사진, 여러 직업을 가진 인물을 그린 초상화가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고 부와 명성을 그에게 안겨줬다는 것 자체가 그걸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자면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또 그것들을 구매하는 이들은 어쩌면 허영심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엘벡은 그런 현대사회의 소비적 예술(말을 바꿔봤다)을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 느닷없이 분위기가 달라지는 3부의 살인 사건은(놀랍게도 미셸 우엘벡이라는 소설가가 무자비한 살인을 당한다) 그런 심증을 굳히게 한다. 어떤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의 살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돈 때문’이었다(그것도 제드 마르탱이 미셸 우엘벡에 그려준 우엘벡 초상화). 현대사회의 예술은 결국 돈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도 없어지는 것일까? 세 번째 시기, 인생의 결론이 인물들과 문명의 이기가 부식되고 식물이 압승하는 장면이라는 점은 의미심상하다.
그런데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소설가 자신을 등장시킨다. 소설가를 대변하는 인물은 주인공인 제드 마르탱이어야 하고, 대체로 그런 셈인데, 조연으로 미셸 우엘벡이라는 ‘유명했던’ 소설가를 등장시키고, 나중에는 그를 무참하게 살해시킨다. 소설가가 자신을 객관화시키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은 그런 상황에 재미를 느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그런 상황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보다 다층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작가는 사진 전시회의 제목으로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고 했다. 실제보다 그것의 표상이 더 흥미롭다는 얘기인데, 실제는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다. 소설도 그렇다. 미셸 우엘벡은 분명 이 소설을 어떤 의미로 썼겠지만, 그걸 읽는 나에게 다가온 의미가 더 흥미로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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