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이 묶은 네 편의 중단편(260쪽짜리 <피가 흐르는 곳에>를 중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은 나름대로 공통점이 있다. 기묘한 이야기? 아니 그보다 ‘한 방울의 환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전체 이야기에서 딱 한 방울만 환상을 섞었다. 그 환상은 우리의 현실 세계에는 있을 수 없는 얘기인데, 정말 그럴까? 하는 한 움큼의 의심을 가지게 한다.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다. 스티븐 킹은 그 의심과 긍정의 얇은 면을 비집고 넓혀 놓았다. 우리는 이야기를 이야기로 읽을 뿐이지만, 스티븐 킹의 이야기가 넓혀 놓은 공간에서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터무니 없지는 않은...
각각의 소설에 대해 짧은 인상을 얘기하자면,
<해리건 씨의 전화기>
누구나 해볼 수 있는 상상이다. 묘지에 묻혔는데 전화는 계속 연결되는... 그리고 의문의 사건이 무덤 속의 해리건 씨의 어떤 수완에 의한 것은 아닌지 하는... 오싹하기보다는, 소년의 상상력과 성장 과정이 더 중심에 있는 듯하다.
<척의 일생>
세상에 종말로 치닫고 있다. 지진으로 캘리포니아주 대부분이 바다로 가라앉고, 여기저기에 대형 산불이 일어난다. 점점 인터넷에 제한되고, 휴대폰이 정지되는데, 모든 광고판에 “39년 동안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문구가 뜬다. TV에서도 계속 그 문구만 뜬다. 사람들은 ‘척’이 누군지 모른다. 소설은 세 편의 연작으로, 시간을 거슬러 간다. 그리고 척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스티븐 킹은 <작가의 말>에서 척을 이야기 안에서 춤을 추도록 했는데, “인간의 심장과 영홍은 해방시킨다는 점에서 춤을 사랑하게에 그 이야기를 쓰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그린 미래는 그렇게 즐겁지는 않다.
<피가 흐르는 곳에>
‘파인더스 키퍼스’의 소장이 된 홀리 기브니. 한 고등학교 폭발 사건이 터지고, 홀리 기브니는 폭발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에 위화감이 느껴지면서 의심스럽다. 이 소설은 한쪽으로는 『홀리』로 이어지고, 또 한쪽으로는 『페어리테일』로 연결된다. 한쪽은 홀리의 탐정 홀리의 성장으로, 다른 한쪽은 환상의 이야기다.
제목이 ‘피가 흐르는 곳에’이지만 그렇게 유혈이 낭자하진 않다(아닌가? 고등학교의 폭발 사건은 그런데... 그런데 이 사건은 그저 배경일 뿐이라...) ‘피가 흐르는 곳에 특종이 있다’는 뉴스업계에서 쓰는 말에서 온 제목이다.
<쥐>
단편은 쓰지만 장편은 쓰지 못하는 문학 교수. 문득 기가 막힌 스토리가 떠올랐고, 거의 고립된 시골 오두막으로 장편을 쓰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친 날, 지독한 감기에 걸린 그는 쥐와 거래를 한다. 파우스트의 거래를 연상케 하는... 작가라면 그런 거래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악한 마음이 든다.
상상은 복고적일 수도 있고, 미래지향적일 수도 있다. 스티븐 킹의 상상력은 어느 쪽이라 하기가 그렇다. 지나치게 현대적이지 않으면서도 현대 문명의 이기를 적절히 배치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