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현, 『이타주의자 선언』
‘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이 겹치는 영역을 알아채고 신경 쓰는 마음’. 저자가 내린 ‘이타심’, ‘이타주의’의 정의입니다. 책 서두에 나오는 이 말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생각할 게 많았습니다.
이타심을 얘기하면서 왜 ‘나’를 얘기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다고 하지 않고, ‘겹친다’고 했을까?
무엇인가 행동하는 것을 얘기하지 않고 ‘마음’이라고만 하고 그쳤을까?
읽다 보니 이 모든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라고 한 것은 여전히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어느 정도나 관여해야 할까? 그저 바라만보고 생각만 해도 되는 것일까? 깊이 관여하고 해결하려고 나서야 하는 것일까? 정답은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데, 저자가 말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딱 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 책을 잘못 읽는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 ‘경계’를 이야기합니다. 매우 조심스럽다는 얘기겠지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그래서 마음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틀리면서도 그 어떤 지점에 다가가려고 연습하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장인이란 그런 것이듯. 하지만 어떤 다른 분야의 장인과 달리 마음의 장인은 또 없을 듯합니다. 죽을 때까지 연습해야 할 듯도 합니다. 아마 그런 노력이 이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읽으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더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글자만 읽고 건너뛰게 되는 부분도 종종 있었습니다. 뭘 읽었지 하며 다시 돌아가 읽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읽고 감명받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마웠습니다. 생각하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나 자체를 생각하고, 나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을 읽은 것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