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오래간만에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읽은 소설이었다. 가슴 뛰는 놀라운 반전이라든가, 서늘함, 통쾌함 같은 것 없이 그렇다고 커다란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스며드는 소설이다.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는 출판사에서 성공적인 편집자로 일하다 쉰 살이 넘어 대학에서 초빙 강의를 하게 되었고, 푸릇푸릇한 청년들과의 대화가 젊은 시절의 열정이 되살아나 소설을 쓰게 되었다 한다. 그 첫 소설이 바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원제: 화산 자락에서)다. 그는 이 소설로 64회 요리우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쉰 살이 넘어 쓴 첫 소설이라면 이럴 수 있구나 싶다. 특히 출판사의 편집장으로서 갖은 분야의 지식을 습득해왔던 것들이 바탕이 되어 잔잔한 울림을 주는 소설 한 편을 오랫동안 준비해왔구나 싶다. 잔잔한 울림이라고는 했지만, 그 울림이 과연 무엇인지는 집어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1982년이 시간적 배경이다. 건축학과 학생인 사카니시가 졸업을 앞두고 선망하던 무라이 슌스케의 설계사무소에 들어가게 된다. 몇 년 동안이나 신입을 받지 않았던 설계사무소였는데 이례적인 일이었다. 설계사무소는 여름이 되면 도쿄를 떠나 아사마 산 자락의 아오쿠리 마을의 여름 별장으로 이동해서 여름을 나면서 일을 한다. 특히 그 해에는 현대도서관 경연을 준비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낸다(사카니시를 채용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소설은 사카니시가 여름 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건축은 물론, 음악, 새, 꽃, 음식 등등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섞여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급박하게 조사한 것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품고 안아왔던 그런 류의 것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름 별장에서 사카니시는 건축을 배우고, 인간관계를 배우고, 사랑을 하게 된다(사카니시가 무라이 선생님의 조카딸인 마리코와 연애을 시작하는 부분은 소설이 지루해질 무렵인데, 절묘하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경연을 앞두고 설계사무소의 수장 무라이 슌스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만다. 결국 경연에서는 떨어지고, 설계사무소의 사람들을 하나둘씩 자기 길을 찾아 떠난다. 무라이 선생님은 목숨을 건지고 의식도 돌아오지만 1년 3개월 만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사카니시의 사랑도 어느 결엔가 멀어진다. 그들이 맺어졌다면 소설이 아닐 것이다.
29년 후 사카니시는 여름 별장을 찾는다. 그의 곁에는 설계사무소에 입사했을 때 그를 지도했던 유키코가 있다. 마리코와 헤어지고 그는 그녀와 결혼하고 설계사무소를 공동 운영하고 있었고, 사카니시는 마리코의 아버지, 그러니까 무라이 선생님의 동생이 인수했던 여름 별장을 인수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방문한 것이다. 젊은 시절, 화산 자락의 별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곳에 여름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다른 소설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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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유튜버의 소개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봤더니 “교보문고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에도 네 번째로 이 소설이 소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