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웹스터, 『조류독감이 온다』
저자 로버트 웹스터는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즉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연구자이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독감바이러스가 조류에 흔하게 존재하면서, 생체 내에서 조합되어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밝혀낸 과학자다. 또한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경고한 과학자이기도 하다(이상하게도 구입한 책에는 저자와 옮김이에 대한 소개가 없다! 인터넷서점엔 있다!).
이 책은 로버트 웹스터의 회고록 성격이지만, 자신이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관한 살아 있는 레전드 같은 이라 관련 분야의 흐름에 관한 리뷰같은 성격도 가지게 되었다.
회고록 성격이긴 하지만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딱 끊어버리고 대학원에 진학한 후 처음으로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처음 접했던 연구 얘기부터 시작한다. 그러고는 거의 연구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면 매우 학술적이면서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이야기들이 탐정소설같은 느낌이라 정말 재미있다(전공 언저리에 있는 사람이라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저자의 연구 여정은 우리가 조류독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밝혀나가는 이야기다. 조류가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 얘기에서 시작해서, 1957년의 아시아독감, 1968년의 홍콩독감 팬데믹이 어떤 바이러스에 의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저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활약이 펴려진다. 2009년의 돼지독감(우리는 신종플루로 부른다)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된다. 『세계 감염 예고』에서도 언급되었던 얘기인데, 과잉 경고로 WHO나 미국 CDC, 그리고 전문가들이 비판을 받았었다. 저자는 그 문제에 관해서 다 인정받았다는 식으로 맺고 있지만 CDC의 수장은 직을 관두고, 그 트라우마로 평생을 고생했다. 일이 커지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런 결과적으로 과장되게 보이는 경고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스페인독감을 일으킨 바이러스에 관한 것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신에 관한 내용이다.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를 밝힌 것이야 다른 데서도 소개되었지만(나도 소개했고), 그 바이러스를 제조해서 실험한 내용을 소개한 대중서는 드물다. 그리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어떤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처럼 설득력 있고 쉽게 설명하는 책도 드물다.
이 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나왔다. 그래서 그 내용은 전혀 없지만, 포스트-코로나19에 관한 책이라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가 않다.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다음 팬데믹은 조류독감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해왔다. 지금도 코로나19 이후에도 다른 무엇보다도 신경쓰이는 질병이 바리고 조류독감이다. 실제로 2003년 이후 (이 책이 나오는 시점까지) 1000거닝 넘은 인간 감염 사례가 나왔고, 감염자 중 30%가 사망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인간-인간 전파 사례가 없거나 거의 드물기 때문에 다행이다. 어떤 이는 20년이 넘도록 그런 사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는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기도 하지만, 바이러스의 특성상 언제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지금의 모습을 바꾸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파가 가능해지면 그야말로 손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 형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인플루엔자바이러스의 과거, 저자의 과거 연구 이야기를 회고하는 내용을 넘어서 우리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경고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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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거나 혹은 조금 뜨끔했던 게 있었다. 저자와 그의 동료들이 새들에서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을 밝혀낼 때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다(혹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을 때 실망하는 모습). 마치 나오기를 바랐다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일인데 말이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그런 면이 없지 않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연구 결과를 인정받을 수 있구나, 논문으로 낼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그런 연구 결과가 나온 바로 직후에는 걱정스럽고, 두려워진다. 그게 과학자다. 어쩔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