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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기록으로 다시 읽는 대한제국사(史)

김태웅, 『그들의 대한제국 1897~1910』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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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만 900쪽이 넘는 대작(大作).

대한제국이 출범하기 직전부터 1910년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기를 다섯 명의 일기로 재구성하고 있다. 단순히 다섯 명의 기록을 병렬식으로 구성하고 있지 않다. 시간순으로 쓰면서 그때그때의 기록을 통해 사건과 재구성하고, 그들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인식을 보여주면서도 최대한 저자의 평가는 자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우리 독자는 그들 인식의 성과와 한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가 재구성하고 있는 기록의 주인공 다섯 명은 윤치호, 귀스타브 뮈텔, 정교, 황현, 지규식이다. 윤치호와 황현은 잘 알려진 인물이고, 뮈텔은 안중근과의 관련성 때문에 조금 알고 있었지만, 정교나 지규식은 처음 접하는 인물이다. 특히 지규식은 평민 출신으로 자기(瓷器)를 왕실 등에 조달하는 공인(貢人)이었다. 이들은 꾸준히 일기를 썼던 인물들이다. 일기는 자신의 내면만을 기록한 게 아니라 정국에 대한 기록도 보탰으며, 거기에 관여한 여러 인물들에 대한 평가, 그리고 자신의 감상과 평가도 더해졌다. 물론 개인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귀중한 역사 사료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의 기록을 재구성하는 것이 갖는 의미는 이들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사건과 시국을 보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어 보인다. 《윤치호 일기》를 남긴 윤치호는 일본과 미국 유학 후 독립협회에 깊게 관여하면서도 중앙 정계를 끊임없이 지향하였던 인물이다. 외세의 침탈에 반대했지만 문명 개화를 통한 조선인의 의식 개조를 주장했다. 고종의 능력과 성격, 행동에 대해 비하하면서 많은 인물들에 대한 기록과 평가를 남겼다.


뮈텔 역시 한반도에 신부로서, 주교로 들어온 이후 일기를 써서 《뮈텔주교일기》를 남겼다. 신부이면서도 대한제국의 중앙정계와 외국 인사들과 친분이 깊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조선의 이익보다는 천주교의 선교와 천주교 신자의 이익에 매우 민감하고 많은 신경을 썼다. 독립협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개신교에 대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매우 부정적이었다.


정교는 《대한계년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독립협회 활동을 매우 열심히 했던 인물이다. 나는 잘 몰랐지만,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정부와의 타협을 주장하는 윤치호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강경파에 속했다. 그렇지만 남궁억에 대해서는 일기 곳곳에 불신과 비판을 했다. 저자는 이것이 신분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완전히 바뀌지 않았던 탓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황현은 한일합방 소식이 전해지자 절명시를 짓고 죽음을 택한 인물로 유명하다. 《매천야록》은 지방에 기거하면서도 중앙과 외국에 대한 소식에 민감했던 황현의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라고 한다. 임오군란부터 시작하여 1910년 일본의 한국 병합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한 기개 높은 선비의 기록이자, 역사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지규식은 《하재일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41세(1891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일기는 앞서의 윤치호, 정교, 황현의 기록과는 다른 시점에서 당시의 정세와 민중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 그는 평민이었지만, 정국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고민이 많았으며 고통을 겪었다. 계몽운동과 구국운동에 관심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는 참여하지 못했고, 대한제국의 강제 병합 소식을 듣고는 담담했다. 아마 비통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많은 평범한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점점 외세의 침탈에 무너져가면서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안타까웠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일기 다섯 개를 통해서 우리는 당시를 살다간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외세의 침탈에 분노하지만, 자신의 유불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임금을 머저리같은 인물이라면 비판하지만 자신을 등용시켜주기를 바라고... 어떤 이는 안중근의 의거 같은 일에 감탄하지만, 또 어떤 이는 비판을 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그 시각을 가지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바라보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굵직굵직한 역사의 흐름에서 많은 사람들의 대응을 볼 수도 있지만, 공식 기록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사건과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고, 흥미롭다. 읽으면서 책의 두꺼움을 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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