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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삶, 부재에 대한 그리움

할레드 호세이니, 『그리고 산이 울렸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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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든,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든 단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할레드 호세이니와 그의 작품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그런 의미에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런 것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감동스럽고 훌륭한 작품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야겠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글쎄 매우 단편적이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왼쪽, 오른쪽으로 수시로 침략을 받았던 땅이라는 것. 근대 이후에는 영국, 소련, 그리고 21세기 미국까지 점령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만 땅이라는 것. 탈레반, 그리고 알카에다... 뭐 그런 것들이다. 소설에서 나비가 마르코스에게 전한 편지에서 “이 나라가 겪은 고통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나는 그걸 전쟁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전쟁은 어떤 상황을 종결짓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상황을 만들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알 수 있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194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한 가족의 비탄스런 운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 가장 중심되는 뼈대를 이루는 것은 압둘라와 파리 오누이의 운명이다. 그럼에도 할레드 호세이니는 그들의 분량을 압도적으로 배정해 놓지 않았다.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을 고루 배치하면서, 마치 연관이 없는 듯 시작했다가 결국은 다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얽힘은 아프가니스탄, 아니 우리 지구에 사는 많은 사람의 보편적인 운명과 관련이 있다.


여러 시간대와 여러 지역의 이야기가 서로 얽혀 있는 소설은 그 때마다 중심이 되는 인물이 다르다(그들은 때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처음에는 압둘라와 파리 오누이의 아버지 사부르(혹은 그가 들려주는 동화), 이어서는 압둘라와 파리가 가난 때문에 헤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압둘라와 파리의 어머니는 파리를 낳다 죽는데 새어머니로 사부르를 짝사랑했던 파르와나가 들어오고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파르와나는 질투로 쌍둥이 언니를 다치게 하고 결국은 죽게 했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아프가니스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유스런 영혼을 지녔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풀려나지 못해 결국은 파리를 데리고 프랑스로 떠나버리는 닐라,

닐라를 짝사랑하는 압둘라와 파리의 외삼촌이자 파르와나의 오빠 나비,

나비를 사랑하는 닐라의 남편 술레이만 와다티, 나비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술래이만을 죽을 때까지 보살핀다.

전쟁이 끝나고 카불로 들어온 성형 외과 의사 마르코스, 그는 나비가 죽으면서 남긴 편지를 통해 압둘라와 파리의 만남늘 성사시킨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어릴 때 개에 얼굴을 물어뜯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탈리아,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미국에 정착해 의사가 되었지만 고향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드리스,

무자헤딘 출신으로 고위직에 오르고 부자가 된 장군과 그의 아들 아델,

압둘라의 딸로 고모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또 다른 파리 등등등.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면 수 세대의 이야기를 완성시켜나간다.


압둘라와 파리는 결국 만난다.

압둘라는 평생을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다 기억을 잃어버린다.

파리는 어릴 적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평생 부재를 느끼며 그리워해왔다.

그 둘의 만남, 아니 그 둘과 그들을 둘러싼 많은 인물들의 관계는 ‘산을 울린다’.

사람들의 만남은 결국 어떤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 소설의 주제는 결국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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