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R. 체크, 《RNA의 역사》
과학적 업적이 어느 정도나 대중적으로 인정받는지, 혹은 얼마나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는지를 보는 기준은 많은 테지만, 나는 그중 한 가지로 그 업적인 어떤 교과서에 실리느냐를 본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과학적 업적은 그야말로 누구라도 알아야 하는 과학적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과학적 업적은 보편성을 갖는 업적으로,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교재에 실리는 업적도 사실은 대단한 것이다. 대학 일반 교재에 실리기 위해서는 과학에서도 좀 더 넓은 분야에서 인정받는 지식이다. 그 다음으로는 대학원 수준의 교재, 보다 더 전문적인 부분으로 가면 리뷰에 실리는 업적, 뭐 이런 식으로 갈 것 같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토머스 체크란 과학자의 업적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그의 업적은 어느 수준이냐면 고등학교 생명과학 교과서에 실리는 정도다. RNA가 유전정보의 전달뿐 아니라 촉매 작용도 함께 한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를 통해서 RNA가 최초의 생명의 분자라는 강력한 증거도 함께 제시되었다는 것이 우리나라 모든 생명과학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다(물론 체크의 이름은 제시되지 않지만). 왓슨과 크릭이 DNA의 구조를 밝힌 연구, 에이버리가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을 증명한 연구, 모노와 쟈코브의 유전 조절에 관한 연구 등과 나란히 하는 연구인 셈이다.
체크는 이 연구, 즉 유전물질과 촉매 작용을 함께 하는 RNA에 관한 연구로 올트먼과 함께 1989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나는 잘 몰랐는데, 그게 40대 초반이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굉장히 획기적인 연구이지만, 이미 대학 때부터 듣고 있던 연구이고 어떤 깊은 통찰력 같은 것도 포함된 연구라 꽤 경력이 쌓인 후에 밝혔고, 그래서 노벨상도 50대, 60대쯤에 받지 않았을까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체크는 그 이후에 어떤 길을 걸었을까? 혹시 PCR의 원리를 제시하고 노벨상을 받고는, 이후에는 연구를 접어버리고 셀럽으로 살아간 캐리 멀리스와 같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체크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 DNA파였던 체크는 인트론/스플라이싱 연구로 RNA가 유전물질임과 동시에 촉매라는 것을 발견한 이후 완전히 RNA파로 돌아서 RNA 연구에 매진하고, 거의 노벨상급에 해당하는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오고 있다. 세포의 분열 횟수를 조절하는 염색체의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제에 관한 연구 등과 같은 것이다. 그는 많은 과학자들과 교류하고, 또 많은 과학자들을 길러내면서(대표적인 것이 제니퍼 다우드나 같은 이다. 바로 크리스퍼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현역 과학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길게 배경 설명을 했지만, 이 책은 바로 그의 연구에서 핵심되는 물질, 바로 RNA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DNA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던 RNA가 생명 현상의 조절에서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또 노벨상 등으로 그 업적이 조명을 받으면서 책도 많이 나왔다. 제니퍼 다우드나나 커털린 커리코와 같은 RNA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의 얘기(《코드 브레이커》, 《돌파의 시간》)도, 김우재의 《꿈의 분자 RNA》 같은 책들이고, 지금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제는 RNA의 시대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라고 여겨질 지경이다.
그런 RNA에 관한 책들 가운데서도 체크의 이 책은 이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쌓아온 과학자가 RNA가 어떤 과정을 통해 각광을 받게 되었으며,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이루어갈 수 있는지를 때로는 들뜬 어조로, 또 때로는 냉정한 어투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최대한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써가며 설명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그에게는 제일 어려운 부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체크의 연구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보았던 적은 없지만, 그의 연구에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왜 테트라히메나(Tetrahymena)라고 하는 조그만 벌레(?), 그것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생물체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체크는 자신의 연구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부분도 꽤 자세히 밝히고 있다. 세균 대신에 진핵생물을 연구하고 싶었고, 효모나 초파리, 쥐와 같은 일반적으로 쓰는 모델 진핵생물에서는 전사(그는 전사transcription 연구를 하고 있었다)와 관련한 유전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테트라히메나라고 하는 연못에 사는 단세포 원생생물을 주목했는데, 이 생물의 세포 하나에는 리보솜 RNA를 만드는 유전자가 1만 개나 있다는 것이 체크의 선택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보잘 것 없는, 주목받지 못하는 생물을 연구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해낸 것이다.
체크의 경우는 연구 주제는 물론 연구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체크도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상당히 실망스러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도 환자를 직접 연구하거나, 인간의 세포나 쥐와 같은 것을 연구하지 않으면 연구비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테트라히메나를 연구하겠다고 연구계획서에 쓴다면 거의 첫 단계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심지어 효모, 선충, 초파리를 이용하는 연구도 찬밥 신세라고 체크는 지적하고 있다. 물론 당장에 응용 가능한 질병 중심의 연구를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체크의 RNA 촉매나 크리스퍼와 같은 혁신적인 연구는 쉽지 않을 것이다. RNA의 역사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