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 바다를 제패하다

잭 웨더포드, 《바다의 황제》

by ENA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고려 왕실과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피신했다. 지금 보면 거의 육지나 다름없어 보일 정도로 연결된 섬이지만 몽골군을 그 바다를 넘어가지 못했다. 어찌해서 고려를 굴복시킨 이후 고려군과 함께 일본을 침공했을 때는 이른바 가미카제에 두 번 연거푸 당하고 물러서야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몽골은 육지에서는 무적이었지만, 바다에서만큼은 맥을 추지 못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바다의 황제’라고? 몽골의 황제가? 그렇다면 몽골을 바다를 정복했다는 얘기? 정말?

그렇다. 잭 웨더포더는 바로 바로 이런 선입견을 산산조각내고 있다.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서 칭기즈 칸의 손자로서 어쩌면 권력 투쟁에서 최종 승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쿠빌라이가 바로 ‘바다의 황제’다. 몽골의 황제로서 중국 대륙을 석권하고 ‘(대)원’이라는 중국식 왕조를 세운, 그래서 원세조가 된 바로 그다. 지금의 베이징에 수도를 세우고 중국식 통치 방식과 풍습을 많이 도입했지만, 여름이면 몽골의 초원으로 돌아가곤 했던 황제가 쿠빌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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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쿠빌라이는 실질적인 세계 제국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데 바다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바다를 정복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 황제였다. 거대한 제국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연결하는 데 바다를 이용하는 것은 육지를 통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했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중국 대륙의 남쪽에서 아직도 숨을 쉬고 있던 송나라를 정복하는 데도 수군은 필요했지만.


쿠빌라이는 수군을 양성하고 지금의 베트남 지역을 공격하고, 일본을 침공했다. 물론 실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미 몽골은, 원나라는 바다의 황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비록 쿠빌라이는 자신의 제국이 남방의 바다마저 지배하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이미 그의 생애에 이루어가고 있던 업적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실크로드, 바로 바다의 실크로드를 완성하고 있었다.


그런 바다의 제국으로서의 면모는 일 칸군의 왕비로 선택도니 쿠케진 공주가 마르코 폴로와 함께 베이징에서 출발하여 호르무즈를 거쳐 티브리즈까지 가는 항해를 통해서 확인된다. 남중국해를 거쳐, 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섬 사이를 통과해 인도대륙과 스리랑카를 거쳐 호르무즈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육상을 통해 몽골에 이르렀지만, 몽골에서 십수 년간 지낸 후 유럽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로 해상을 통해서였다. 몽골이 재패한 바닷길이 훨씬 안전하고 빨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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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가 죽은 후에, 그가 구축한 바닷길은 그의 손자 테무르 칸에 의해서 제국의 성격을 바꾼다. 역시 권력 투쟁을 통해 집권한 테무르는 이제 칭기스 칸의 세계 정복 목표를 폐기하고, 상업과 협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연결하는 정책을 추구한다. 대결 대신 협상을 촉구했고, 결국 페르시아의 일 칸국, 러시아의 울루그울루스, 중앙아시아의 차가다이 왕국 등 몽골제국의 사촌 격 제국등이 테무르를 대권으로 인정하기까지 한다. 쿠빌라이도 이룩하지 못했던 일이다. 말하자면 햇볕이 폭풍보다 더 나았다고 할 수 있을까? 중국은, 몽골, 원나를 통해 세계의 제조 중심지이면서 유통 또한 장악해내면서 실질적인 세계 제국이 된 것이다.


그러나 몽골은 망한다. 주원장의 명나라에 의해서였다. 농민 출신 주원장은 바다의 중요성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다. 영락제 때의 정화의 원정은 중국의 바다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가장 극적으로 보인 사례였지만, 또한 거의 마지막 활약이기도 했다. 이후 명나라는 바다에서 철수하고, 그 즈음 바다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계로 진출한 유럽 제국에 침략당하고, 어두운 시대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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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몽골과 쿠빌라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바다의 중요성, 세계를 연결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 다시 바다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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