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현, 《나쁜 유전자》
뉴스를 보다보면 '00 유전자 발견' 이런 헤드라인을 단 기사를 자주 접한다. 이를테면, '암 유전자'와 같은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폭력(유발) 유전자', '동성애 유전자'와 같은 경우다. 이렇게 단정적이지 않고, '~와 관련된 유전자'라고 하면 논문의 초록(abstract)이라도 읽어봤거나, 아니면 그래도 과학의 마인드를 조금이나마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질병 유전자, 폭력 유전자 같은 것은 없으니까 밀이다.
생명을 이해하는 여러 관점과 그 관점들의 변화를 철학적으로 살핀 《생명을 보다》로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상도 여럿 받았던 정우현 교수의 정우현 교수의 《나쁜 유전자》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나쁜 유전자는 없다고(물론 좋은 유전자는 없다).
여덟 장(chapter)으로 나누고 각각의 장마다 이른바 '나쁜' 유전자를 등장시킨다.
피부색 유전자, 희귀병 유전자, 사나운 유전자, 열등한 유전자, 범죄 유전자, 동성애 유전자, 암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이 가운데는 그 자체만으로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피부색 유전자라고 하면 단지 피부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가리키는 것이라 그것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용어와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관점 자체에 피부색에 대한 편향이 담겨 있다는 데 있다. 피부색으로 인종을 정의하고, 인종에 따라 능력의 차이가 있고, 그래서 차별은 당연하다는. 하지만 실제로는 피부색을 결정하는 단일한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고, 그런 유전자도 피부색을 결정하는 데에만 작용하지 않을뿐더러, 피부색에 따라 능력이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당연히 인종이란 것도 '과학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 장마다 다소는 서로 다른 뉘앙스의 유전자를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장에서는 그런 유전자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관점을 비판하고 있고(피부색 유전자, 열등한 유전자, 범죄 유전자, 동성애 유전자 등), 어떤 장에서는 유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빛은 불행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대표적으로 희귀병 유전자). 그리고 사나운 유전자에서는 특히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깊게 논의하고 있으며,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무려 리처드 도킨스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모두 일관적이다. 모두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으며, 인간의 모든 성향과 행위를 물질적 원인으로 환원하는 본질주의를 물리치고 있다. 이것은 유전자가 발현되고, 어떤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유전자를 가진 존재, 즉 사람이 처해있는 환경과 맥락이 중요하다는 관점이며, 이는 또한 인간의 개별성, 독자성, 다양성에 대한 굳은 신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방식도 다소는 전적으로 과학 문헌에만 기대고 있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당연히 과학적 성과에 기대고 있지만, 《생명을 보다》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철학적 문헌을 통해서 이와 같은 논의를 심화하고 있다. 그래서 정우현 교수의 책들은 과학 철학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다만 '과학'에 방점을 찍는).
그러나 다소 부정확하거나 애매한 서술도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병목효과와 창시자 효과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황가의 죽음에 대한 정황 설명 같은 것들이다. 물론 이게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뒤흔들지도 않고, 많은 가치 있는 설명들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약간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것보다는 좀 철학적 현학이 내용을 좀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이런 것도 읽었다. 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좀 있다. 물론 이런 언급도 자괴감의 일종일까 싶기도 할 정도로 딱 내용에 맞게 인용하고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