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후생의 연암 박지원

한국고전번역원(김흥식 엮음), 《쉽게 읽는 열하일기 1》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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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정조 4년 1780년, 영조의 셋째 딸 화평옹주와 결혼하여 금성위로 봉해진 사은사 박명원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 중국(청)을 처음 밟는다. 그는 압록강을 건너 연경으로, 그리로 중국 황제의 여름 휴가지 열하로 오가면서 기록을 남겼다. 바로 《열하일기》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록이 아니라고 한다. 실학자로서의 연암의 가치관이 짙게 배어 있으며, 국가 발전에 관한 비전과 통찰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머로 가득찬 소설도 함께 한다.


서해문집에서 펴낸 《쉽게 읽는 열하일기》는 한글 세대를 위해서 내용을 많이 풀어썼고, 지금 시대에 읽어봤자 별로 의미가 없는 내용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있다. ‘일러두기’를 보면 여기에 수록하지 않은 《열하일기》의 내용은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연암을 이해하는 데 그다지 지장이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믿고 읽는다.


《쉽게 읽는 열하일기 1》은 사신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 요양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인 <도강록(渡江錄)>, 십리하에서 소흑산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성경잡지(盛京雜識)>, 만리장성의 끝 산해관에 들어선 이후 연경에 이르는 일정을 기록한 <관내정사(關內程史)>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호질(虎叱)> (여기서는 ‘범의 꾸짖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이라는 유명한 소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끝까지 읽어야 이 《열하일기》의 가치를 충분히 음미하고, 연암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일 테지만, 1권만으로도 연암이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는지는 상당히 알 수 있다. 일단 몇 가지만 기록해본다.


무엇보다 연암은 무척이나 호기심이 많았고, 관찰력이 뛰어났다. 보고 듣는 것을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그가 기록한 것들은 매우 자세한데, 그가 그냥 유람을 하러 중국 땅을 밟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보고 듣고 배워 조선 땅에 유용한 것을 알리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비록 청나라가 오랑캐라는 인식, 그래서 숱하게 ‘되놈’이라고 언급하고, 명나라에 대한 회고, 소중화 의식 등을 벗어던지지는 못했지만(그도 시대의 아들이었다), 그래도 발전된 청의 문물을 조선에 들여와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철칙이었다. 바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이었다(56쪽).


그는 조선의 문제가 사대부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한 인식은 수레에 대한 글에서도 드러난다. 수레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조선의 상황이 바퀴의 규격이 달라서 그렇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고, 그 이유로 “이는 사대부의 허물입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들은 글을 읽으며 떠들어댈 뿐 기술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도무지 연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암은 “이렇게 한갓 글만 읽을 뿐이니 참된 학문에 무슨 유익이 되겠는가”라고 설파하고 있다(209쪽).


이제 연경에 도착한 조선의 사신 일행은 황제가 열하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건 2권의 기록이다. 연암은 1권의 것에 더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주장하게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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