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번역원(김흥식 엮음), 《쉽게 읽는 열하일기 2》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본을 바탕으로 김흥식이 엮은 《쉽게 읽는 열하일기》의 두 번째 권은 연경에 도착했지만 열하로 떠난 청의 황제가 조선의 사신 일행에게 열하로 오라는 연락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암은 가고 싶은 마음과 머뭇거리는 마음으로 망설였는데, 정사인 박명원이 “열하는 앞서 다녀간 사람들도 보지 못한 곳”이라며 꼭 가길 권해 동행하게 된다.
도착해야 할 날짜까지 정해진 상황에서 강물까지 넘치며 고생 끝에 연암을 비롯한 사신 일행은 아흐레만에 열하에 도착한다. 이 기록이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이다. 만리장성 너머에 있는 열하, 그러니까 북쪽으로 향하는 일정이다. 그리고 열하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태학유관록(太學留官錄)>이 이어진다. 사신 일행이 열하에서 ‘태학관’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붙여졌다. 그리고 열하에서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는 기록과 유명한 소설 <허생전>이 덧붙여진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으로 《열하일기》는 맺는다.
연암 박지원은 ‘구경벽’이라고 할 만큼 온갖 것을 보고자 했다. 그것은 연암이 호기심이 가득찬 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고 들은 것을 그냥 개인적인 차원에만 간직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중국의 문물을 조선의 것과 비교했고, 조선의 문물과 제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를 궁리했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었고, 그것을 읽은 연암은, 그래서 조선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연행길에서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구범진 교수는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에서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쓴 이유 준의 하나가 자신의 8촌 형이면서 정사였던 박명원의 누명을 벗기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박명원은 조선으로 돌아온 이후 황제를 직접 알현하고, 상당히 대접을 받은 데 대해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았지만, 열하에서 티베트의 판첸 라마를 만나고 불상을 받았다는 것으로 성균관 유생 등으로부터 커다란 비판을 받았다. 성리학의 나라, 소중화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조선의 관리가 판첸 라마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불상을 받아가지고 돌아온 것은 용서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명원은 ‘봉불지사’라는 치욕스런 별명을 안게 되었다. 그런데 박지원은 이 상황을 교묘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글을 구성하여 박명원이 판첸 라마에게 머리를 조아리지도 않았고, 불상도 어쩔 수 없이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열하일기》에 기록함으로써 박명원의 누명을 벗겨냈다고 구범진은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당연히 《열하일기》의 <태학유관록(太學留官錄)>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대목을 보면 이렇다.
우선 판첸 라마를 보게 된 것은 황제가 “사신은 곧장 찰십륜포로 가서 반선 액이더니(판첸 라마)를 뵈어라.”라고 전갈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티베트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밝히고, 그곳의 종교에 대해서도 짧게 서술하고, “사신은 마지못해 나아가 반선(판첸 라마)을 만나보았으나, 마음속으로는 불평을 품고 있다.”고 쓰면서 역관이나 하인들이 무척 걱정하고, 판첸 라마와 황제를 욕하고 비방한다고 한다. (이 책이 몇몇 부분을 생략하고 있어서인지 불상을 받은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에 속하지 않는데, 이것이 《열하일기》를 쓴 중요한 목적일 수 있을까 싶다. 물론 박지원이 자신의 은인이랄 수 있는 박명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이 부분을 잘 썼겠지만 그것 자체가 《열하일기》의 어떤 동력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열하일기》의 세계는 크고, 진취적이다.
다시 읽는다면 생략되지 않은 《열하일기》를, 또 자세한 해설이 달린 《열하일기》를 골라도 될 것 같다.
*** 읽는 내내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청심환’이다. 박지원은 고마움의 표시로 청심환을 건네고, 중국의 관리건 보통 사람이건, 중이건 ‘청심환’ 하나를 얻기 위해 이러저런 꿍꿍이를 부린다. 청심환의 가치가 당시 그 정도였단 것은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