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이란 무엇인가?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2》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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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3부인인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지만, 민음사 번역판에서 2권은 2부의 중간에서 시작한다. 2부는 핍이 유산 상속 예정인이 되어 런던으로 이주한 후 성년이 되기까지의 신사 교육 생활을, 3부는 성년 이후 은인을 만나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위대한 유산》은 무척이나 정교한 소설이다. 연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앞부분에서 던져놓은 이른바 ‘떡밥’을 뒤에서 완벽하게 회수해내는데,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구상한 후에 소설을 썼다면 정말 찰스 디킨스는 놀라운 작가적 능력을 지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앞의 인물이 뒤에 가서 다시 등장하고, 그들이 핍의 삶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절대 우연적 요소라고 할 수 없으며, 정교한 인물 관계를 그려놓고 소설을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소설의 앞으로 돌아가 보면 이미 그 인물이 그런 역할을 맡도록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다만 독자가 그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재미 삼아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대충 그려보기도 했는데, 마치 그물처럼 얽혀 있으면서도 그 관계가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다층적 구조를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다.


핍과 중요한 관계를 맺는 인물들은 여럿이다. 그중 첫 번째가 조와 누나다. 누나는 초반 악역을 맡았고(그러나 핍을 끝까지 자신이 거두었다는 점에서 완벽한 악역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매부인 조는 끝까지 핍의 편에 선다. 희생의 아이콘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러다.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러는 핍으로 하여금 더 높은 신분을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킨 존재다. 기괴한 존재인 미스 해비셤은 핍이 자신을 은인으로 착각하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이용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인간성을 되찾는다. 거기에는 핍의 호소가 있었다. 아름다운 에스텔러는 핍이 사랑하는 소녀이고 여인이다. 자신과 짝으로 정해졌다고 여겼지만 그건 핍의 착각이었다. 핍은 에스텔러가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을 알지만 마치 운명처럼 에스텔러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불한당 같은 인물과 결혼을 하고 만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핍과 에스텔러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 사랑이 중요한 테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관계는, 소설의 가장 초반에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후반에 다시 등장하는 매그워치와의 관계다. 매그워치는 탈옥수로서 핍에게 작은 도움을 받고 핍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그 돈을 핍이 신사가 되도록 하는 데 쓰도록 한다. 그리고 유형지에서 돌아온 그는 쫓기고 결국은 잡혀 사형당하고 만다. 핍이 그를 만나고는 처음에는 두렵고, 그를 떨쳐내고자 했지만 결국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키면서 (신사로서의 방탕한 생활을 뒤로 하고) 각성의 모습을 보인다.


그밖에도 여러 인물들이 그의 곁에서 이야기를 돕는다. 불패의 변호사 재거스와 변호사 사무실의 웨믹, 끝까지 믿어주고 돕는 친구 허버트(그 도움은 상호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악당 올릭과 콤피슨이 있고, 펌블추크와 같은 인물은 위선의 대명사로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 군상들 사이에서 핍은 커가고, 고민하고, 좌절하고, 방탕해지고, 개과천선하고... 그렇게 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누군가에게는 비난을 받고 방해를 받는다. 자신이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또 외면하기도 한다. 누구라도 그러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비록 19세기에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쓰여 당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명백하게 현대적인 주제를 담고 있기도 하다. 보편적인 인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읽히는 모든 고전 소설이 그렇듯이.


또한 이 소설은 세태에 대한 강력한 비판 소설이기도 하다. 그 비판은 말할 것도 없이 신사라는 지위에 대한 비판이다. 영국 산업 혁명 이후 대두된 부르주아지가 재산을 갖추면서 귀족 계급과 대비되는 교양과 인격을 지닌 존재로서 인식되던 신사가 단지 재산만이 강조되어 직업을 갖지도 않고, 하층민에 대한 그릇된 우월의식으로 똘똘 뭉친 위선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찰스 디킨스는 이러한 속물적인 신사 계급을 풍자하고 있으며, 이러한 존재가 사회에서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찰스 디킨스의 문장력이었다. 물론 번역을 거친 것이지만 디킨스가 어떤 문장을 썼는지는 그 너머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유려하고, 이처럼 화려하면서, 이처럼 분명한 문장이라니! 소설을 읽으며 필사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처음 가졌다. 찰스 디킨스의 문장을 여러 차례 읽으면 나도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물론 좀 과한 만연체는 쳐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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