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피터스,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엘리스 피터스의 역사추리소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보다 더 정교한 스토리의 소설이다.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사이의 잉글랜드 왕권을 놓고 싸우는 12세기의 상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건 시대적 배경이자, 이 소설에서는 사건의 배경이기도 하다. 마지막 작품 《캐드펠 수사의 참회》도 마찬가지인데(중간의 어떤 작품이 또 그런지 나는 아직 모른다), 12세기 잉글랜드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스티븐 왕은 모드 황후를 지지하며 버티는 슈루즈베리 성을 공격한다. 압도적 병력으로 성을 점령하고 포로를 붙잡는다. 포로는 모두 94명. 왕은 자신에 반대해서 칼과 창을 겨눈 이들에게 한 톨의 자비를 베풀지 않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냉혹하고 잔인한 처사였지만, 중세에는 흔했으리라.
캐드펠 수사는 수도원장과 스티븐 왕의 허락을 받아 시신을 수습하는데, 그가 세어보니 시체는 94구가 아니라 95구였다. 시체 하나는 분명 다른 데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시체들에 던져진 것이었다. 이 시체는 누구의 것이며, 누가, 왜 죽였는가? 이제 탐문과 추리가 시작된다.
소설에서 가장 큰 반전은 물론 휴 베링어다. 엘리스 피터스는 독자의 관심을 잔뜩 휴 베링어에게 집중시킨다. 그가 캐드펠 수사 못지 않은 지력의 소유자라는 것이 점점 드러나면서 둘 사이의 은밀한 대결이 펼쳐진다. 그리고...
물론 휴 베링어의 정체는 반전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고전 반열에 들어가는 추리소설인데... 그런데 그가 그렇지 않을 거라며 읽던 독자의 입장에서도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그런 성격과 행동의 인물이었다. 반면 캐드펠은 캐드펠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캐드펠 수사도, 휴 베링어도, 살해 사건의 파렴치한 범인도 아니다. 내게는 두 명의 여인이었다. 바로 고디스 애더니와 얼라인 시워드다. 그들은 중세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주체적인 여인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몇 권 읽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여인들이 대체로 그러했다. 캐드펠 수사는 이렇게 생각한다.
“투쟁으로 점철된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자들이 겪어야 할 운명이 바로 그런 것이라니. 캐드펠은 씁쓸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아니, 생각만큼 그렇게 수동적인 역할은 아니야.” (355쪽)
엘리스 피터스는 아마 그 시대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 더 능동적인 여성들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니 상상하고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 그게 실제가 아니더라도 작가에게는 진실일 수 있다. 혹은 그게 실제일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지극히 중세적이다. 만약 결투의 결과가 반대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