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메이. 이 이름을 어디서 들었더라...
이 의문은 금방 풀렸다. 지은이 소개글.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의 옮긴이.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는 최근에 내가 낸 책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종종 언급하는 ‘질환(disease)와 질병(illness)’의 차이, 의미를 처음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2429976763).
아서 프랭크의 책에 대해 독후감(https://blog.naver.com/kwansooko/222430523181)을 쓰면서는 옮긴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특이한 필명에 조금 관심이 있어서 가물가물 기억에 남아 있었을 뿐. 다시 찾아본 옮긴이 소개글은 이렇게 되어 있다. "통증 때문에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 고통과 다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질병, 고통이라는 문제에 관해 읽고 쓰는 일에 관심이 있다."
사실 그렇다고 그녀가 아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쓰는 글이 아픔에 대한 것이 된다는 것은, 적어도 반영된다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란 책을 썼다.
아프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겨우겨우 받아든 병명은, ‘만성피로증후군’. 어쩌면 별것 없어 보이는, 그러니까 매일매일 피곤한 하루를 직장인, 아니 모든 생활인의 질병 같은 보이는 이 질병이 메이가 받아든 병명이다. 그러나 조금은 짐작한다. 이 질병이 얼마나 힘든 질병이라는 것을. 한없는 통증, 침잠, 우울감, 절망.
이 질병의 고통은 질병의 고통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 어떻게 보면 멀쩡해 보이는 이 질병은 남들은 잘 알아주지 않는다. 의지를 얘기하고, 마음가짐을 얘기하고... 마음의 문제가 아닌데도 그렇다. 원인도 잘 밝혀지지 않았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이은 면역 과다가 가장 그럴듯한 추정이지만, 증거는 별로 없다. 메이는 그 병을 앓는다.
그러나 투병기는 아니다. 얼마큼 아프고, 그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얼마만큼 좌절을 경험하고, 때로 희망을 가지고, 그래서 어떻게 극복해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다는 얘기도 있고,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좌절에 대한 얘기도, 가끔씩 찾아드는 희망에 관한 얘기도,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게 메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아니다. 그녀는 그냥 아픔에 관하여 얘기하고 싶다.
아픔에 관하여 얘기하는 데 있어 가장 걸림돌은 얘기의 수단, 즉 언어다. 언어는 아픔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 천편일률적인 단어들이 내 아픔을 모두 표현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비유를 쓴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픔을 공감해줄 수는 없다. 아픔은 그런 거다.
그러나 아픔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언어에 의존해야만 한다. 메이가 기대고 있는 것은 이미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 작가의 이야기다. 알퐁스 도데의 <라 둘루>를 심층적으로 읽는다. 알퐁스 도데는 신경매독 환자였다(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걸 쓴 작품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미리 알았다면 내 책에 넣었을 거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삶에 대해 깊게 천착한다. 알퐁스 도데의 글에서는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쓰고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글은 그녀에 대해, 그녀의 고통에 대해 왜곡해서, 주로는 과장해서 전하는 남성 작가들의 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은 많다.
메이는 아픔을 이야기하는 언어의 불완전함에 대해 절망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아픔을 공감하는 글에 용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모순일까? 그렇지는 않다. 어찌 되었든 글을 쓰는 사람이 글로 위안을 얻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리 불완전한 수단일지라도 말이다. 그 불완전한 수단 때문에 고민하는 것일 뿐.
그런데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문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대응책 개발과 보완, 수정, 실험이 이어진다. 모든 환자는 어느 정도 과학자가 아닌가. 환자는 시행착오와 반복을 통해 귀납적 지식을 쌓아간다." (116쪽)
다 나름대로 책과 글을 읽는 것이다.
그녀가 아픔에서 더 많이 벗어났으면 좋겠다. 다음 글을 좀 더 밝은 글이면 좋겠다(그렇다고 이 책이 음울하기만 하다는 것은 아니다).
* 사실 김병민의 《병원에 간 과학자》(https://blog.naver.com/kwansooko/224105710320)와 이어 읽으려 했던 책이다. 과학자와 여성학자가 아픔에 관하여 쓰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보려 했다. 정말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