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게 하나의 레슨

이언 매큐언, 《레슨》

by ENA
KakaoTalk_20260102_153549975.jpg


아내가 사라졌다. 칠 개월 난 아들을 두고서 자신을 찾지 말라는 쪽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오래된 트라우마가 그(롤런드 베인스)를 괴롭힌다. 군인이던 아버지, 어머니를 떠나 기숙학교에 들어간 열한 살의 소년 롤런드는 피아노 선생님 미리엄 코넬에게 빠져버린다. 삼 년 후, 쿠바 미사일 위기 속에 롤런드는 미리엄을 집으로 찾아가고, 둘은 선을 넘는다. 당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관계는 분명 성적 학대였다. 소설의 제목 ‘레슨’은 롤런드 베인스의 삶 기저에 놓인 가장 중요한 기억이 이 때의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연대기적으로 봤을 때 이언 매큐언의 자전적 요소가 짙은 소설이라 한다. 롤런드의 태어난 해에서부터 시작해서, 직업군인인 아버지, 싱가포르, 리비아 트리폴리 등을 옮겨다닌 어린 시절, 기숙 학교의 기억,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형의 존재까지.


그러나 자신을 떠나간 후 유명 소설가가 된 아내 앨리사가 말한 대로 이 소설은 회고록이 아니라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과 작가 또는 실제의 인물이 겹쳐 보일 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소설가가 다시 창조해낸 인물이다. 소설의 주인공 롤런드 베인스가 많은 면 이언 매큐언 자신에게서 가져온 인물일 수는 있지만, 그를 작가와 동일하지 않다.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작가의 필요에 따라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해낸 인물일 따름이다.


소설은 현대사를 종단한다. 물론 현대사에 기록되어여 할 모든 지역의 모든 사건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사건보다는 그때의 상황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백장미단이라든가, 냉전 시기 동독의 감시사회, 그리고 코로나19까지. 등장인물들은 역사의 배경 속에서 능동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저 파묻혀 가는 존재도 아니다. 영향을 받으며, 그 한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행동이 어찌 되었든 역사의 흐름에 (작은) 영향을 주는 우리 대부분처럼 말이다.


롤런드에게는 여러 길이 있었다. 만약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어쩔 수 없이 그 길에 자신이 접어들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소설은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해서 다른 길을 택했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이건 삶에 대한 긍정이다. 대표적으로 부모의 잘못을 덮기 위해 비밀스럽게 입양되어 버린 롤런드의 형 로버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그래도 잘 살았다고 여긴다. 자신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에 대한 회한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삶은 우연적이다. 그러나 그래서 필연적이다. 벌어질 일을 알 수 없기에(아무리 예측하려 하여도 그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은 적인 있는가?), 우리는 두려워하며 나아간다. 그렇게 나아간 길은 내가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선택되어야만 했던 길일 수도 있다. 그걸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소설 속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 모든 게 하나의 레슨이었다.”

왜 레슨이라는 게 필요한가? 초보이므로, 혹은 프로라 하더라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레슨이 필요하다. 삶도 비슷할 터이다.


이언 매큐언은 롤런드를 통해 또 이런 말도 써 놓았다.

“그의 인생은 이야기하고 보니 별 볼 일 없었다.”

파란만장한 것 같아 보이는 인생이지만... 이야기로 옮겨 놓으면... 그렇다.


그리고,

“삶을 돌아보며 너무 많은 패배를 인정하는 건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 좀 잘못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성하고, 후회한다. 그러나 너무 나의 삶을 비하하지는 말자. 이렇게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가 실패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스스로에 대해 관대해질 필요도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접 경험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