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가공범》
고다이 쓰토무 형사가 주인공인 새로운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이미 이 형사가 등장했던 소설이 있다 했다(옮긴이의 글에서 알게 되었다). 《백조와 박쥐》. 읽은 소설이다. 형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백조와 박쥐가 서로가 서로를 잉태하고 있는, 그런 의미의 제목과 내용이었다는 것 정도 기억한다.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는 고다이 형사가 본격적으로 활약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시리즈라고 했던 듯하다.
《백조와 박쥐》를 읽고 쓴 글(https://blog.naver.com/kwansooko/222483654660)을 다시 보니 《가공범》과 매우 유사한 플롯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백조와 박쥐》에서는 1984년의 사건이 2017년의 사건으로 이어지고, 《가공범》에서는 2025년 사건이 40년 전의 일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사건을 풀기 위해서 먼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주요 수법이다!
여기서도 범인은 분량의 절반 정도에서 ’일단‘ 잡힌다. 누구나 범인이 아마도 다른 이이며, 그가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것까지 숨기고, 그런 것은 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도 조금은 정당하게 추리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범행을 자백한(정확히는 자백한 듯한) 이 사람이 아니라면 누굴까? 분명 이미 언급한 인물일 텐데(느닷없이 생경한 인물이 등장해서 내가 범인이요 하는 것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본다. 판단이 쉽게 서지 않는다.
범인을 쫓아가는 과정은 고다이 형사가 잘 안내하고 있다. 성실하게, 증거 하나, 말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뚝심으로 조금씩 조금씩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은 밝혀진다. 다만 깜짝 쇼가 아니다. 고다이 형사가 밝혀가는 과정 중에 사건의 진실이 가지는 범위를 조금씩 좁혀졌고 독자도 충분히 따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한다. 왜 소설의 중간쯤에 이미 ’가공범‘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약간의 의외성, 그리고 인간적인 공감.
다만 여기선 제도와 현실, 이상의 딜레마를 다루진 않는다.
그래도 전형적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