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현재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에서 교수 충원에 애를 먹을 만큼 기생충학(parasitology) 전공자가 매우 드물다(그래서인지 많은 의과대학은 기생충학교실이라는 이름 대신 환경의학교실 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기생충학 전공자가 줄어든 것은 물론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염자가 적으니 연구꺼리도 적고, 수요도 줄어든 것이다. 거기에 구충제가 잘 듣는다. 치료에도 별 문제가 없어 더욱 기생충학을 연구해야 할 동기가 사라졌다고 여긴다.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전세계 인구의 20%가량이 기생충에 감염되었을 거란 통계도 나오고 있고, 이른바 NTD(Neglected tropical disease, 소외열대질환)이라고 하는 여러 질병들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단기간에 구충 사업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나라이지만 여전히 기생충은 우리 곁에 있다. 실제로 (기후변화가 주원인 중 하나이지만) 1990년대 이후 한반도에서 말라리아 발생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프리카에서(즉, 책상머리나 교탁 앞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기생충을 연구하고 있는 정준호의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를 읽다 보면 기생충이 얼마나 우리 인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 밀접한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거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특히 여러 기생충이 숙주를 조종하는 예들을 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영악한지도 알 수 있다. 물론 그것들이 어떤 의식을 지닌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생명의 진화에 관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숙주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손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숙주의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생충이야말로 진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그러한 기생충의 놀라운 진화는 말할 것도 없이 숙주와의 경쟁, 즉 ‘붉은 여왕과의 뜀박질’의 과정이자 결과이다. 새의 부리 형태가 기생충에 영향을 받는다든가, 수컷 날개의 화려함이 기생충으로부터의 건강함을 나타낸다든가 하는 것은 고전적인 예에 해당하지만, 그 밖에도 다양한 현상을 통하여 기생충이 숙주에 적응하고, 숙주가 기생충에 대항하고, 다시 기생충에 그에 대한 전략을 수정하는 과정들은 엿볼 수 있다.
기생충학은 비록 현재 과학의 주류 분야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의학의 역사에서 뛰어난 연구자들이 있었기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가도 할 수 있다. 즉, 학문의 흐름은 부침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기생충학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지도 모르는 일이며, 실제로 현재 절실하게 필요한 지역도 있다. 그리고 기생충학은 기생충을 이용한 치료 방법 개발 등 미래의 학문으로 탈바꿈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생충을 정의한 범위 등이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기생충의 범위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생충 외에도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까지, 논의의 필요에 따라 넓히고 있다), 기생충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없기에 소중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