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었다 하면 좀 읽은 셈이고, 그렇다고 하루키 매니아처럼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단편소설은 이게 처음이다. 하지만 그의 긴 소설들과 별 다른 차이는 느끼지 못한다. 좀 신기한 일이다. 그냥 이야기들이 일찍 끝나면서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줄 뿐, 여기 실린 7개의 이야기들을 서로 분리해서 독립적으로 읽을 수가 없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의 제목이지만 전체 이야기들을 포괄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모두 남녀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소설들인데도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을 단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제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남녀 사이의 관계이지만 그 관계는 대부분 피상적이거나 과거의 관계이며, 혹은 배반당하는 관계이다. 소설들의 남자들이 유부녀와 관계를 갖거나(<셰에라자드>, <독립기관>, <가노>), 반대로 아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다(<드라이브 마이 카>, <기노>), 또는 기묘한 관계를 유지한 과거가 있다(<예스터데이>, <사랑하는 잠자>, <여자 없는 남자들>). 그러니까 남자들의 곁에는 거의 항상 여자들이 있던가, 여자들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한다. 하지만 ’없다‘. 그걸 사랑이라는 감정의 무상함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걸 쉽게 인정할 수 없지만, 어쨌든 소설드른 쓸쓸하고, 숱한 성관계에 대한 서술들은 하나도 야하지 않고 무상할 뿐이다.
한 가지 느낀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참 젊은 시절, 내지는 어린 시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었구나, 하는 것이다. 성인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성인의 감정을 묘사하면서도 어딘가는 어린 시절, 청년 시절에 닻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막막함‘이다. 어쩌면 그게 그의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든 그 시절을 그렇게 건너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