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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Dec 04. 2020

밤과 과학, 그리고 도덕

에른스트 페터 피셔, 《밤을 가로질러》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밤을 가로질러》은 밤, 어둠, 꿈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또한 과학에 관한 책이다. 이를 연결하면 밤, 어둠, 꿈에 관한 과학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간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라면 그래야 한다는 듯이. 


피셔는 ‘밤’에 대해 사색한다. 밤이란 무엇인가? 밤의 어둠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밤은 부정적인 것이기만 한 것인가, 긍정적인 면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밤과 어둠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이야기해 왔고, 현대의 과학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이어서 밤에 이루어지는 일, 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게 잠의 목적이며 현상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몇 세기 전보다 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피셔는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잠과 이른바 수면학은 어디서 기원했고 어디까지 왔는지, 잠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그 다음은 어디로 가야할까? 당연히 ‘꿈’이다. 꿈 역시 상당 부분 미지의 영역이다. 꿈은 잘 모르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해석하고자 하는 영역이란 점에서 독특하다. 읽을수록 꿈은 신비한 현상이 분명해지고, 과연 과학이 이를 밝혀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여기까지 밤과 어둠, 잠과 꿈 등에 관한, 즉 현상으로서의 밤에 관한 문학, 역사, 과학의 이야기였다면, 피셔는 바로 방향을 돌린다. 즉, 밤을 설명하는 과학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멈추고, 과학에 존재하는 밤의 측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는 과학의 밤 측면이란 이성을 통한 과학적 사실의 추구가 아니라 열정과 감정, 꿈 등에 의한 과학적 사실의 발견, 혹은 영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 ‘낮 과학’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면, ‘밤 과학’은 열정적이고 들떠 있다. 이에 대해서 여러 과학자들을 언급하고 있지만, 피셔가 특별히 길게 인용하고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 과학자는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와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이다. 그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프랑수와 자코브의 책은 여러 권 읽었음에도 그들에게서 그런 면모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과학은 이성의 상징이라는 것은 맞겠지만, 이성만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의외이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피셔는 끝으로 ‘도덕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친구에게는 우호적이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해지는 도덕의 이중성을 언급하면서, 인간에게 존재하는 ‘악’에 대해서 여러 모로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스티브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피셔는 인간성에 대한 비관주의로 빠져들지는 않는다. 과학의 밤 측면을 강조하는 데서 예상할 수 있듯이 피셔는 인간의 도덕이 도덕의 그림자, 즉 밤 측면인 인지하고 짝을 이뤄야만 존재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개별적 인간의 특수성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도덕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즉, 도덕의 이중성을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또는 도덕의 감성적 측면을 인정하지 않으면 진정한 도덕은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피셔가 밤과 어둠, 잠과 꿈의 과학에서 머물지 않고, 과학 철학으로 도덕 철학으로 거침없이 건너가는 모습은 매우 의외이면서 놀랍다. 여기의 내용을 읽는 것도 황홀한 일이지만, 그런 지적 도약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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