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 《인생은 소설이다》
작년 딱 이맘 때, 기욤 뮈소의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읽었다. 정확히 1년 만에 읽은 기욤 뮈소의 소설은 다시 작가가 주인공이다. 게다가 절필한 작가.
사실 기욤 뮈소는 작가를 자신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 작가다. 어쩌면 가장 잘 아는 직업의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은 편하든가, 혹은 다양한 변주를 줄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작가가 주인공인 경우 그 작가가 쓴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바로 이 작품 《인생은 소설이다》가 그런 장점을 상당히 활용한 셈이다.
이야기는 간단하지 않다. 아니, 간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 소설의 2/3를 읽을 때까지도(세 부분으로 나눠진 이 소설의 두 번째 부분까지를 의미) 기욤 뮈소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작가였는데, 여기서 갑자기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려고 작품을 썼나 싶었다. 각 절마다 꼭지에 등장하는 소설가들의 문장도 그렇고, 플로라 콘웨이와 로맹 오르조스키라는 작가의 상황도 그랬다. 두 작가 중 어느 작가가 진짜 이야기이고, 어느 쪽이 환상인지도 헷갈리고, 오히려 둘이 다른 차원에 존재하면서 서로 침투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면서 스토리의 전개라기보다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기욤 뮈소의 고민과 자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써나, 싶은 순간...
이야기는 갑자기 반전을 이룬다. 아, 내가 여전히 기욤 뮈소를 잘 몰랐었나 싶었다. 앞의 독립된 두 이야기와 그러면서도 서로 환상을 통해 침투하는 내용은 분명히 전체 스토리에 기여하기 위해서 잘 짜놓은 밑밥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이 소설 속 작가가 창작한 작품도 있고, 그 작가가 겪는 이야기도 있고, 그 작가가 그 작품과 소통하는 방식도 있다. 그리고 이후에 전개될 이야기의 단서도 담겨 있다.
그래서 다 읽고 보면, 소설의 구성이 복잡해보이지만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란 걸 다시 깨달을 수 있다. 오히려 이전의 소설보다 단순한 구성일 수도 있다. 한두 매듭만 잘 풀어내면 모두 잘 풀어지는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이 소설도 한두 지점만 잘 포착해내면 전체가 환해지는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구성이 기욤 뮈소가 처음 시도하는 것도 아니고, 기욤 뮈소가 거창하게 그런 이야기 구조를 치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소박하게 꾸며내면서도, 그래서 상당히 친근하게 접근하도록 한다. 그게 기욤 뮈소를 읽게 만드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