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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an 19. 2021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

노마 필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94년이었다. 아시안게임이 일본의 히로시마에서 열렸다. 마라톤 경기가 있었다. 올림픽이나 대부분의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의 골인 지점은 메인 스타다움이지만 이때는 좀 달랐다. ‘평화의 공원’.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를 기념하는 공원이었다. 히로시마에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것도, 이목이 집중되는 장면을 평화의 공원으로 정한 것도 일본의 속내는 분명했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아니라 전쟁으로, 원폭으로 피해를 입은 나라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어 하는.

 

그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이어 아시안게임까지 석권한 황영조 선수였다. 통쾌했다. 공원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다니는 모습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또 씁쓸했다.

 

이 오래된 장면을 떠올리게 된 건 노마 필드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를 읽으면서다.

 

미국인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를 둔 노마 필드(그녀는 어린 시절을 일본의 미국인 학교에서 보냈고, 대학 이후 미국에서 지냈다)가 1년간 외가에서 지내기 위해 1988년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들어온다. 마침 그때는 히로히토가 사경을 헤매는 시기였다. 사회는 자숙의 분위기였다. 연하장 보내는 것도 자제할 정도로. 노마 필드는 일본과 천황, 전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 매개로 세 명의 인물을 만나고, 대화와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 기록이 바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이다.

 

첫 인물은 1987년 오끼나와에 열리는 국민체육대회(우리나라의 전국체전)에서 일장기를 끌어내리고 불태운 슈파마켓 주인 치바나 쇼오이찌다. 그 사건에는 오끼나와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관련한 역사적 의미가 있었고, 일장기라는 상징의 의미도 함께 얽혀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전쟁 와중에 벌어졌던 집단 학살, 천황을 정점으로 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 국가의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요미딴촌의 개발이 가져오는 파급까지.

 

두 번째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자위대원 남편의 신사 합사를 거부한 야마구찌의 평범한 주부 나까야 야스꼬였다. 일본 총리가 참배하는 것으로 늘 문제가 되는 야스쿠니 신사말고도 일본 전국에는 신사가 많다. 종교이면서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이상한, 그럼에도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후원받는다. 가족의 동의 없이 신사에 합사하여 호국영령으로 추앙받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나까야 야스꼬는 반대했다. 오랜 재판 끝에 패소를 했고, 그 판결은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결탁한 종교 단체가 있었고, 소수 종교에 대한 처우 문제가 제기됐고, 일본 사회에서 열악한 여성의 지위 문제도 드러났다. 일본의 헌법에 내세우고 있는 신앙의 자유와 정교 분리 조항이 불완전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 거대한 불합리한 구조에 한 조그만 가정 주부가 도전을 하였고, 법원에서는 패배했지만, 그 의미를 널리 알렸던 것이다.

 

세 번째는 천황이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힌 나가사끼 시장 모또시마 히또시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 당연한 발언이 일본의 공적 인물이 공개적으로 답변한 것은 처음이었다니. 그리고 그로 인해 전국적인 항의가 빗발쳤다니. 물론 그에 대한 감사와 응원의 편지도 쇄도했고, 이는 그래도 깨어있는 이들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살벌한 위협이 있었고, 심지어 총격 사건으로 생명이 오가는 위험까지 있었지만, 모또시마 히또시 시장은 굴복하지 않았고, 한번 더 시장직에 선출되었다(그리고 2014년 사망했고, 그 소식이 우리나라에도 보도됐다).

 

이렇게 세 명과의 만남이지만, 사실은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노마 필드 자신.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가족들과 연관되어 확장되어 바라보게 되는 일본의 폐쇄적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깊게 성찰하고 있다. 세 명의 만남과 대화와는 별로도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죽어가던 천황은 1989년 1월에 사망했다(몇몇 신문을 빼고는 모두 붕어(崩御)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는 끝까지 전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쇼와 시대가 가고 헤이세이 시대가 왔었다. 그리고 2019년 5월부터는 나루히토 시대가 열리면서 레이와라고 한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은행에서도 우체국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예 문서에 그 연호가 인쇄되어 나온다. 단지 국가의 특성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찜찜하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은 모양이다.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을 당연히 일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며 읽었지만, 일본을 넘어서 더 보편적인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가? 노파 필드가 인터뷰한 세 사람이 지적하고, 노파 필드가 고민하는 그 내용들에 우리는 자유로운가? 절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1989년, 바로 그 시점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제목을 가진 책이지만 여전히 읽히고 읽혀져야 하는 책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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