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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an 29. 2021

존 윌리엄스가 입체적으로 그린 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 《아우구스투스》


존 윌리엄스의 4편의 발표 소설 중 마지막 작품 《아우구스투스》를 읽으며 안도했다. 편지와 회고록 들을 촘촘히 엮어 놓아 독자들에게 친절한 듯 보이지만, 이 소설은 절대 친절하지 않다. 소설을 구성하는 많은 편지와 회고록 들은 사건이 벌어지기 전, 벌어진 후의 일과 감상을 얘기할 뿐 정작 사건의 진행은 생략되어 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시기의 역사에 익숙하지 않다면 접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시오노 나나미, 콜린 매컬로, 로버트 해리스 같은 이들의 작품에 감사해야 했다.


그 약간의 불친절만 넘어서면 이 소설은 독특한 매력을 준다. 거의 모두 작가 스스로 날조한 편지와 회고록, 일기들이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존 윌리엄스는 공적으로 기록된 역사와는 별도로 그 역사 속의 인물들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역사를 그리고자 하는 작가들은 당연히 그런 의도를 갖겠지만, 특히 구체적인 사건의 진행을 생략한 채 그 주변을 그리는 수법은 작가의 의도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사건의 흐름보다 그 사건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읽힌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에서는 옥타비우스가 아우구스투스가 되기까지를 다룬다. 카이사르의 암살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시작해서 안토니우스를 격파하여 로마의 황제(끝까지 황제라는 칭호를 거부하고 프린켑스의 위치에서 아우구스투스라 불렸다)가 되기까지의 성공 이야기다. 두 번째 부분의 주인공은 아우수스투스의 딸 율리아다. 율리아는 아버지인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던 마르켈루스와 결혼했다, 그가 죽자 아그리파와, 그리고 또 그가 죽자 (진짜로 다음 황제 자리를 이어받은) 티베리우스와 결혼한다.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정략 결혼이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한 최고 권력자의 딸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그녀는 지금 표현으로라면 타락한다. 그러다 반역 음모에 연루되자 아우구스투스는 간통법으로 율리아를 유폐시킨다. 유폐된 판다테리아 섬에서 기록한(실제로는 존 윌리엄스가 상상한) 일기는 공(公)을 위하여 희생된 사(私)의 비극를 보여준다. 묘한 대비이며, 역사 소설을 쓰면서 존 윌리엄스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짐작케 한다. 전혀 닮지도 않았다고 생각한 소설 《스토너》가 연상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거의 대부분은 차지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 이야기에서 아우구스투스의 글과 목소리는 없다. 마지막에야 죽음을 앞둔 아우구스투스의 편지가 등장한다. 아우구스투스의 회상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에서 주변 인물들의 기억과 느낌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교묘하게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켰던 통치술의 대가라는 것을 연상케 하기도 하지만, 또한 공적으로 기록된 역사와는 다른(‘틀린’이 아닌) 또 다른 역사적, 개인적 진실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니얼 멘델슨의 해설에서도 인용해서 놀랐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여기며 밑줄을 그은 대목도 다음과 같은 아우구스투스의 독백이다.

“내가 그 책을 읽고 내 글을 적다 보니, 문득 이름은 내가 맞는데 나도 잘 모르는 남자 얘기를 하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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