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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Feb 11. 2021

선을 넘기 위하여

오후, 《주인공은 선을 넘는다》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작가 오후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엮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모든 작가의 책에는 그 작가의 세상에 대한 시선이 투영되기 마련이지만, 이 책에는 특히 작가 오후의 생각이 온전히, 상당히 직설적으로 담겼다.


우연히 그의 첫 번째 책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읽고, 바로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를 읽었었다. 그리고 1월에는 네 번째 책 《믿습니까? 믿습니다》를 읽었다. 그게 네 번째 책이라는 것, 세 번째 책이 잇다는 것은 네 번째 책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그리고 돌아가 세 번째 책, 바로 이 책을 읽었다. 말하자면 이제 오후라는 작가의 책에 대한 믿음이 생긴 셈이다.


첫머리부터 고백하고 있는 그의 아니키즘은,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에는 ‘권위에 대한 불복’ 쯤으로 해석한다. 11편의 글 가운데 본격적으로 아나키즘에 대해 쓰는 있는 글은 없지만, 프롤로그나 에필로그에 아나키즘을 언급하고 있다는 얘기는 이 책을 읽는 데 그걸 염두에 두라는 말과 다름없다. 그래서 그의 글을 통해 모든 글의 저변에 흐르는 무엇을 탐지해야 할 텐데, 그건 바로 모든 권위를 의심하고, 복종하지 말라는 얘기다. 결국 “선을 넘어라”는 얘기다.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한 편의 영화를 모티브로 한 꼭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11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읽다보면 굳이 영화 얘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글도 있고, 이 얘기와 저 앞의 영화와 무슨 관련성이 있을까 싶은 글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줄거리와 (그가 영화에서 해석한) 메시지가 그의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는 데 꽤나 효과적이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과격하다 싶으면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또 있다, 적지 않다는, 적어도 기댈 구석을 찾아놓은 셈이니까.


그가 특별히 어떤 분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소수자(여자, 흑인, 동성애자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스타워즈의 가장 마이너한 편과 <해적>이라는 완벽한 상업영화를 골라 역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믿습니까? 믿습니다》로 이어지는 듯한, ‘종교’에 관한 얘기를 잠깐 하기도 하고, 선거와, 공무원 선발에 관한 얘기(추첨으로 뽑자!)도 하고, ‘법’에 관해서 새로운 시선을 전달하기도 한다. ‘돈’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기는 한다. 자본주의에 사는 이상 그가 생각하기에 현대 사회의 가장 강력한 권위는 바로 ‘돈’이니까. 그렇다고 ‘돈’의 세계를 거슬러 극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선동하지도 않는다. 돈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푸념을 하기도 한다. 가끔 지식을 주기도 하고(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사연, 그리고 깡패짓, 암호화폐가 그려내는, 절대 환상적이지 않은, 환장스런 미래 등등), 그런 지식이 소용 없음을 내뱉기도 한다. 두서없다 싶지만, 결국은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 우리 시대가 가진 비합리적 권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선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아니 모두 동의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적어도 그가 아니키스트라면). 개인으로서 세상에 당당히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견해를 가져야 한다. 물론 그의 글을 읽는 것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귀를 대보기 위한 것이고, 나름 근거를 찾고, 또 어떤 부분은 귀담아 듣기 위해서이지만, 그의 이런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건 자체가 권위에 대한 복종에 다름 아니다.


그래도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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