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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May 31. 2021

세상을 잇는 생명, 곰팡이의 세계

멀린 셀드레이크,《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생태계에서 곰팡이의 역할 하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의 정답은 ‘분해자’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곰팡이(균류, fungi)는 온갖 것을 분해하여 생태계의 순환을 가능케 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 중 가장 분해가 힘들다는 리그닌을 분해하는 효소를 가진 것도 균류이고, 균류 중에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것도 있다. 그만큼 분해자로서의 곰팡이의 역할은 인상 깊고, 또 막대하게 중요하다. 


그런데 곰팡이, 혹은 균류(내가 자꾸 균류라고 쓰는 이유는 곰팡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균류 중에 버섯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의 역할을 분해자라고만 한정한다면, 그것 그들을 매우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균류는 지의류의 한 파트너로서 새로운 생명체의 본보기를 보이며, 식물과 균근(mycorrhiza)를 이우러 식물의 생산성을 높인다. 단세포생물로 존재하는 균류인 효모는 알코올 발효를 통해 인간에게 유용한, 혹은 곤란한 물질을 생산하고(물론 그게 그들의 목적은 아니지만), 동물을 조종하는 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 실로시빈과 같은 물질은, 비록 지금은 향정신성 물질로 강하게 규제하지만 정신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역할들을 종합해서 보면, 곰팡이, 혹은 균류는 그것들이 자라는 모양새(균사체를 통해 서로 얽혀가면서 자란다)와 같이 세상을 얽고 잇는, 네트워크의 필수적인 생명체라고 봐야 한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균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조금 방향을 틀었지만, 여전히 균류에 대한 강의를 ‘조금’ 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멀린 셀드레이크가 소개하고 있는 곰팡이, 균류의 이 광범위하고, 놀라운 세계 중 처음 알게 된 것이 적지 않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또 조금은 즐겁기도 하다.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흥미롭고 놀라운 생명체였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곰팡이, 혹은 균류에 대한 관심은 동물이나 식물, 세균 등에 비해서 매우 적다.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것들을 설명하는 중간에 덤으로 소개되거나, 아니면 미생물 등과 뭉뚱거려진 채 소개되기도 한다. 균류만의 특성, 그것들이 세상에서 하는 역할에 대한 수준 높은 교양과학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멀린 셀드레이크의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는 그래서 반갑고, 소중하다. 


멀린 셀드레이크가 이야기하는 곰팡이의 세계를 통해 많은 것을 새로이 알 수 있기도 하지만, 가장 중심되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네트워크’ 세상이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바라바시와 같은 물리학자(《링크》, 《버스트》, 《포뮬러》의 저자)를 소개하는 이유도 균류가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연의 모든 생명이, 아니 생명,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점점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늘 간과하고 있던 것이 바로 곰팡이, 균류의 역할이었다. 이 균류가 없다면 우리의 네트워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멀린 셀드레이크는 바로 그 숨겨진 곰팡이의 역할을 뚜렷하게 보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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